장면: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태그: 시각 편집 m 모바일 웹
편집 요약 없음
태그: 시각 편집 m 모바일 웹
1,101번째 줄:
 
== 일화 ==
장면은 직접 [[로마 가톨릭교회|가톨릭 교회]]의 교리관련 서적을 한글로 번역하여 발표, 출간하기도 했다. [[현석호]]에 의하면 “그는 웬만한 성직자보다도 오히려성직자보다 많은 교리를 알고 있었으며, 또한 성직자 못지 않게 엄격하고 정결된 신앙 생활을 하였다. 그 분은 교리에 금지된 행위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전차가 만원이어서, 표를 주지 못한 채 그대로 내릴 때면 전차표 한 장을 반드시 그 자리에서 찢어 없앴다 한다. 언론인 [[봉두완]]이 장면의 혜화동 사저를 방문했을 때 “집이 무척 작았다”고 한다.<ref name="봉두완2" /> [[내각 책임제]] 하에서는 [[국무총리|총리]]는 집권자나 다름이 없는데, 그런 그의 집이 [[연탄]]난로를 땔 정도로 초라했다<ref name="봉두완2" /> 한다. 그는 총리 재직 중에도 호화로운 식사를 마다하고 직접 [[도시락]]을 집에서 싸들고 다니며 식사하였다.
 
개인적인 일가 친족의 이해 청탁이나 만남을 거절하였고, [[민주당 (대한민국, 1955년)|민주당]] 신파 내에서도 장면의 총리 취임 후, 신파 내부에서 미는 인물에 대한 인사 청탁 압력이 수시로 들어왔으나 장면은 이를 모두 거절하였다. 한편 자녀들 중에도 그가 국회의원이나 국무총리 재직 중에 아버지의 전용 차량을 이용하려 하였으나 장면은 자녀들을 향해 너희가 언제부터 정치가였느냐며 단호하게 물리쳤다 한다.
 
주미 대사로 재직할 당시 그는 [[흑인]] 운전수를 채용하였다. 흑인 운전수는 장면이 이임한 뒤에도 주미한국대사관의 운전수로 있었고, 그는 한국에서 미국을 방문하는 사절단에게 장면의 소식을 물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나를 사람취급해준사람으로 취급을 해준 사람은 그분밖에 없었다”고 회고하였다.<ref>현대한국정치인평전(2) 37페이지</ref>
 
독실한 [[가톨릭]] 신앙인이었던 그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둑]] 같은 취미도 없었다. 그러나 현석호에 의하면 누군가를 만나게 되어 낮이면 점심을 나누고 밤이면 저녁 식사까지 나누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주로 종교에 대한 토론을 했다고 한다.<ref name="jang472">장면, 《한알의 밀이 죽지 않고는》 (가톨릭출판사, 1999 증보판) 471페이지</ref> 현석호는 “그는 종교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피로한 줄도 모르고 정열을 다해 말씀했고, 자기의 뜻이 전달되지 않으면 몹시 안타까워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ref name="jang472"/> 한편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을 탈당하여 그의 문하에 온 김영삼은 술도 담배도 하지 않고 종교 이야기만 하는 그에게 고리타분함을 느끼고 그의 곁을 떠나 조병옥에게 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