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인도교 폭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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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장창국]] 대령에 의해 28일 새벽 2시 30분 폭파가 한번 연기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후 육군본부 등 국군 지휘부와 서울에서 철수하는 각 부대들간에 통신 두절 상태가 심각하여 실시간으로 각 부대별 철수 상황 및 정보 공유를 할 수 없었고 다시 재차 폭파 명령을 전달하러 한강교를 한번 더 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과단성 있게 결단을 내리지 못 하고 계속해서 국군 주력부대의 철수 상황과 북한군이 한강교를 향해 어디까지 진입했는지 이런 상황 파악만 계속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폭파 명령 하달에 실패하여 오히려 북한군에게 한강교를 탈취당 할 위험성이 분명히 존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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