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1737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태그: 되돌려진 기여 m 모바일 웹
213번째 줄:
=== 양반 특권에 대한 비판 ===
박지원은 소설 [[양반전]]을 써서 양반의 특권과 횡포를 신랄히 풍자했다.<ref name="chung159">박은봉, 《한국사 100 장면》 (가람기획, 1998) 159페이지</ref> 그는 국력의 쇠퇴, 민중의 극단적인 빈곤의 근본 원인이 양반 통치 계급제도에 있다고 생각, 양반 계급의 실상을 폭로, 비판하기 위해 양반전을 쓰기도 했다. 그에 의하면 양반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해도 거리낄 것이 없으며, 선비, 글공부라는 핑계 하에 국력에 해를 입히는데도 죄를 묻지 않는 이상한 존재라는 것이다.
앙 섹스
 
'하늘이 백성을 낳았는데 그 백성이 넷이다. 그 중 으뜸은 사(士)로다. 양반이라고도 일컬으며 이익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밭을 갈지 않고 장사를 하지 않으며, 글과 역사를 조금만 공부하면 크게는 [[문과]]에 합격하고 적어도 [[진사]]가 된다. 문과의 홍패는 두 자에 지나지 않지만 온갖 물건을 얻을 수 있으니 돈자루라고도 할 수 있다. 진사는 40세에 첫 벼슬을 해도 큰 고을의 남항(南行, [[음직]], [[음서 제도]]와 같은 말로. 학식과 덕행이 특출하여 추천되었거나, 가문 덕에 하는 벼슬) 수령으로 가서 잘만 풀리면 귀가 양산 그늘에 휘어지고, 배는 종놈의 대답 소리에 저절로 불러지고, 방에는 노리개로 기생을 두고, 뜰에는 명학을 기른다.<ref name="chung159"/>'며 양반의 무위도식을 조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