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안동 김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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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정보
|성씨 = 구 안동 김씨<br>舊 安東 金氏
|그림 = 안동 김씨의 종문.svg
|그림설명 =
|나라 = [[한국]]
|관향 = [[경상북도]] [[안동시]]
|시조 = 김숙승(金叔承)
|원시조 = [[김알지]](金閼智)
|중시조 = [[김방경]](金方慶)
|집성촌 =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원주시]], [[춘천시]]<br>[[충청남도]] [[천안시]]<br>[[전라남도]] [[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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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 = 2020
|인구 = 1,047,474명
|순위 = 11
|비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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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씨족 원류》·《김씨 분관록》· 《증보문헌비고》, 《조선씨족통보》등의 문헌에는 시조가 [[고려]] 삼한공신 태사대광 김일긍(金日兢)이라 한다. 족보에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이라는 대안군 김은열의 둘째 아들인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삼고,<ref>김숙승의 아들이 김일긍(金日兢)이라 한다.</ref> 충렬공 [[김방경]](金方慶)을 중시조로 삼는다. [[김방경]](金方慶)은 수태위중서시랑평장사에 올랐으며, [[1283년]] 삼중대광 첨의중찬 판전리사사 세자사로 치사되었다. 추충정난정원공신 상락공(上洛公)에 봉해지고 충렬공의 시호가 내려지고 숭의전에 배향되었다. [[김방경]]의 아들 5형제 중 맏아들 김선(金愃)은 전법판서, 둘째 아들 '김흔'(金忻)은 삼중대광 상락군, 셋째 아들 '김순'(金恂)은 판삼사사 상락공, 넷째 아들 '김논'(金惀)은 지밀직사사 천우위대장군을 지냈다. 조선 중기에 [[김자점]]이 역적으로 몰려서 처형되어 몰락해 인구가 많은 본관이 되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안동 김씨]]라고 하면 구 안동 김씨일 것이다.<ref>{{뉴스 인용
《씨족 원류》·《김씨 분관록》· 《증보문헌비고》, 《조선씨족통보》등의 문헌에는 시조가 [[고려]] 삼한공신 태사대광 김일긍(金日兢)이라 한다.
 
족보에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이라는 대안군 김은열의 둘째 아들인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삼고,<ref>김숙승의 아들이 김일긍(金日兢)이라 한다.</ref> 충렬공 [[김방경]](金方慶)을 중시조로 삼는다.
 
후손 김효인(金孝印)은 문과에 급제하여 병부상서를 지내고 중서령에 추봉되었다. 그의 아들 [[김방경]](金方慶)은 삼별초를 토벌한 공으로 수태위중서시랑평장사에 올랐으며, [[1283년]] 삼중대광 첨의중찬 판전리사사 세자사로 치사되었다. 추충정난정원공신 상락공(上洛公)에 봉해지고 충렬공의 시호가 내려지고 숭의전에 배향되었다. 후손들이 중시조로 모시고 있다.
 
[[김방경]]의 아들과 손자대에 아들 5형제 중 맏아들 김선(金愃)은 전법판서, 둘째 아들 '김흔'(金忻)은 삼중대광 상락군, 셋째 아들 '김순'(金恂)은 판삼사사 상락공, 넷째 아들 '김논'(金惀)은 지밀직사사 천우위대장군을 지냈다.
 
현대에 들어서는 [[김구]](金九) 초대 임시정부 국무회의 주석을 배출했다.
 
== 분파 ==
* 파조 김숙영(金叔永): [[경순왕]] 후손으로 공부시랑을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
* 파조 김장(金萇): [[김방경]]의 후손으로 장령을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
** 김희수(金希壽): 김장의 5세손으로 문과 급제 후 벼슬이 대사헌이었다.
** 김홍도(金弘度): 김희수의 손자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전한이었으며, 호당에 올랐다.
** 김첨(金瞻): 김홍도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교리였으며, 호당에 올랐다.
** 김수(金睟): 문과에 급제하여 판중추부사를 역임하고, 시호가 소의공이며, 청백리에 올랐다.
* 파조 김용(金龍): 방약박사를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
* 파조 김정(金挺): 지보주사를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보주(甫州)는 지금의 예천(醴泉)으로, 지보주사는 지금의 예천 군수이다.)
* 파조 김구정(金九鼎): 직장을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
** 김광수(金光睟): 김구정의 현손으로 진사이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 파조 김유선(金惟詵): 검교군기감을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
* 파조 김이생(金理生): 판전객시사를 역임하고, 일파를 이루었다.
 
== 몰락 ==
한 시대를 지배한 명문 세도가로 알려져 있지만 구 안동 김씨는 세도가가 아니며 조선 시대에 완전히 몰락한 한미한 가문이었다. 세도가는 [[신 안동 김씨]](新 安東 金氏)다. 본래 신려시대까지만 해도 구 안동 김씨가 성골이었고 신 안동 김씨는 진골이었다. 구 안동 김씨가 [[경순왕]](敬順王)의 직계 후손이고 신 안동 김씨는 [[경순왕]](敬順王)의 방계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 안동 김씨는 조선 후기부터 몰락했고 신 안동 김씨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족보 관리도 많이 편입되어 대부분의 [[안동 김씨]]라고 하면 구 안동 김씨일 확률이 98% 이상이다.<ref>{{뉴스 인용
|제목=주말에 읽는 문중 그뿌리를 찾아서
|url=https://www.cc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98986
|출판사=충청타임즈
|날짜=2008-01-01}}</ref> 현대에는 [[김구]](金九) 주석은초대 [[경순왕]](敬順王)의 직계 후손이다. 참고로 본관이 안동이라는건 가문이 안동이라는 것이 아니라임시정부 관향이국무회의 안동이라는주석을 뜻이다배출했다.
 
== 인물 ==
{{참고|분류:안동 김씨 (구)}}
=== 고려 ===
* 김효인(金孝印): 병부상서(兵部尙書),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였다.
* [[김방경]](金方慶): 왜구를 물리친 공으로 상장군이 되고, 대몽항쟁의 주력이었던 삼별초의 난을 평정하고 행영중군병마원수, 시중 등을 역임하엿으며, [[충선왕]] 때 벽상삼한삼중대광에 추증된 무신으로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 김선(金愃)[또는 김선(金宣)]: [[김방경]]의 장자로 전법판서를 역임하고 상장군 수안군(遂安君)에 봉해졌다.
* 김흔(金忻): [[김방경]]의 차자로 벼슬이 도첨의을 역임하고, 시호가 상락공(上洛公)이다.
* [[김순]](金恂): [[김방경]]의 셋째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여 봉익대부 밀직사부사 문한학사를 지내고 아버지의 작위와 식읍을 이어받아 중대광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지고 문영공(文英公)의 시호를 받았다.
* 김승용(金承用): [[김순]]의 조카로 문과에 급제하여 보문각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하였다.
* 김승택(金承澤): 김승용의 아우로 정승(政丞)을 지냈으며, 시호는 양간공(良簡公)이다.
* 김구용(金九容): 김승택의 손자로 문과에 급제하고 대사성(大司成)을 지냈으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 김영돈(金永旽): 김순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고 좌정승(左政丞)을 지냈으며, 상락부원군에 봉해지고 문숙의 시호를 받았다.
* 김영후(金永煦): [[김순]]의 아들로 우정승(右政丞)을 지내고 상락후(上洛侯)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정간공(貞簡公)이다.
* 김사렴(金士廉): 김영후의 손자로 안렴사(安廉使)를 지내고, 서원에 배향되었다.
 
=== 조선 ===
* [[김사형]](金士衡): [[조선 전기]] 정사공신 1등에 책록되고 좌정승에 임명되고 상락부원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익원공(翼元公)이다.<ref>고조는 김방경이고, 증조부는 김순(金恂)이며, 조부는 김영후(金永煦)이고, 아버지는 부지밀직사사 김천(金蕆)이다.</ref>
* 김돈(金墩): 김사형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고 이조판서를 지냈다.
* 김승(金陞): 김돈의 아우로 밀직사사를 지냈다.
* 김주(金澍): 김사렴의 7세손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대사헌(大司憲)을 지내고, 공신으로서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호당에 뽑혔으며, 시호는 문단공(文端公)이다.
* [[김질 (1422년)|김질]](金礩): 김승의 손자로 문과에 급제하고 좌의정을 지냈으며, 상락부원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정공(文靖公)이다.
* 김무(金碔): 김질의 아우로 판서를 지내고, 공신으로서 풍양군(豐陽君)에 봉해졌으며 청백리에 뽑혔다.
* [[김수동]](金壽童): 김질의 조카로 문과에 급제하고 영의정에 올랐으며, 공신으로서 영가부원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경공(文敬公)이다.
* 김찬(金瓚): 김질의 현손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이조판서를 지내고, 시호는 효헌공(孝獻公)이다.
* 김수경(金壽卿): 김수동의 아우로 공신으로서 영양군(永陽君)에 봉해졌다.
* 김충갑(金忠甲): 김영돈의 9세손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보덕(輔德)을 지냈으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 [[김제갑]](金悌甲): 김충갑의 동생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충청감사를 지내고, 시호는 문숙공(文肅公)이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 [[김시민]](金時敏): 김충갑의 아들로 무과에 급제하고 경상우병마절도사를 지냈으며, 공신으로서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충무공(忠武公)이며 충사(忠祠)에 배향되었다.
* 김시약(金時若): 김시민의 아우로 무과에 급제하고 부사를 지냈으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 [[김시양]](金時讓): 김시민의 종제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판중추부사를 지냇으며, 시호는 충익공(忠翼公)이다. 청백리에 뽑혔고, 서원에 배향되었다.
* 김치(金緻): 김시민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감사였으며, 호당에 뽑혔다.
* [[김득신 (시인)|김득신]](金得臣): 김치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동지중추부사였다.
* 김휘(金徽): 김시양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이조판서였다.
* 김수령(金壽寧): 김방경의 8세손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공신으로서 복창군(福昌君)에 봉해졌다. 호당에 뽑혔으며, 시호는 문도공(文悼公)이다.
* [[김응하]](金應河): 김방경의 11세손으로 조선조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선천 군수였다. 명(明)나라에서 조칙을 내려 요동백(遼東伯)에 봉하였다. 시호는 충무공(忠武公)이며, 충사에 배향되었다.
* 김응해(金應海): 김응하의 아우로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어영대장이었다.
* 김중기(金重器): 김응하의 증손으로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훈련대장이었다.
* 김세익(金世翊): 김응해의 손자로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총융사였다.
* 김흡(金潝): 김세익의 손자로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어영대장이었다.
* 김협(金浹): 김응하의 현손으로 무과에 급제하고 공신으로서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 근대 ===
* [[김구]](金九): 초대 임시정부 국무회의 주석을 지냈다.
* [[김신 (군인)|김신]](金信): [[김구]](金九)의 아들로 한국의 교통부장관을 지냈다.
 
== 항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