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
[[파일:몽유도원도 찬시.jpg|섬네일|왼쪽|200px|[[신숙주]]의 찬시 ([[1447년]])]]
세로 38.7 cm, 가로 106.5cm의 크기이다. 세종의 셋째아들이 꾼 무릉도원에 대한 꿈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도연명]]의 《도화원기》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보통의 두루마리 그림과는 다르게 왼쪽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성을 가지고 있는데 왼편 하단부에는 현실세계, 나머지 오른쪽 부분은 꿈속 세계를 표현하였다. [[복숭아]] 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절벽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 대조적인 분위기이지만 통일감이 있고 조화롭게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중국 화풍인 이곽파 화풍을 이용해 그렸는데, [[부감법]]을 이용해 그림 공간처리나 높이에 따른 대조, 운두준법, 세형침수, 조광효과의 표현 등에서 이곽파 화풍의 영향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림 양쪽으로 안평대군의 제서와 시1수가 적혀있고, [[신숙주]], [[정인지]], [[박팽년]], [[성삼문]] 등의 당대 20여명의 찬문이 있는데 모두 친필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사는 물론 서예사로써 큰 가치가 있고, 한국 산수화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 몽유도원도는 일본의 [[덴리 대학 부속 덴리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어떤 경로로, 어떻게 반출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임진왜란]] 당시 제4진으로 조선에 출병한 [[시마즈 요시히로]]가 [[경기도]] [[고양시|고양현]]에 있는 절 대자암(大慈庵)에서 이 그림을 약탈해 일본의 손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추정만 할 뿐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몽유도원도를 소장했던 일본소장가 중에서 도진구징(島津久徵)의 생애나 활동을 미루어 볼 때, [[1893년]] 이전에 이미 일본에 있었다는 사실이 추정되고 있으며, [[1955년]]경부터 [[덴리 대학]]이 소장하고 있다. 학계에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이나 이 작품의 가치 등을 미루어 보았을 때 사실상 약탈당한 문화재라고 추정하고는 있지만 아직 명확한 증명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2009년]] [[9월 29일]], 몽유도원도는 [[2009년]] [[11월 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여민해락(與民
偕樂)'을 통해 [[1996년]] [[호암미술관]]의 '조선 전기 국보전' 이후 13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전시되었다. 단, 본 전시와는 별도로 [[10월 7일]]까지만 일반에 공개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092322081574524|제목=안견 '몽유도원도' 13년 만에 고국으로|출판사=아시아경제|날짜=2009-09-24|확인날짜=2009-09-24}}</ref>
== 사진 ==
[[파일:Dream Journey to the Peach Blossom Land.jpg|섬네일|가운데|800px|안견 <몽유도원도> (1447년), [[일본의 중요문화재]], [[덴리 대학 부속 덴리 도서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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