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령 포르모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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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나라 정보
|종류=스페인
|현지이름= '''스페인령
|다른표기=Hermosa
|존속기간_시작= 1624년
|존속기간_끝= 1642년
|p1 = 미다그 왕국
|flag_p1
|p2 = 네덜란드령 포르모사
|flag_p2 = Flag of the
|s1
|flag_s1
|s2 = 미다그 왕국
|flag_s2 =
|국기_그림= Flag of Cross of Burgundy.svg
|문장_그림= Royal Coat of Arms of Spain (1580-1668).svg
|전쟁기_그림=
|나라_표어=
|국가=
|지도_그림=
|수도= [[훙마오청|산토도밍고 요새]]
|수도위치=
|공용어= [[스페인어]], [[중국어]], [[타이완어]]
|종교= [[로마
|정부형태=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
|지도자_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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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완의 역사}}
'''에르모사'''({{llang|es|Hermosa}}) 혹은 '''
==
1544년, 포르투갈인들이 유럽인 최초로
1626년, 대만도 북부가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어 [[마닐라]](Manila)를 중심으로 한 스페인령동인도제도(Spanish East Indies)의 일부에 편입되었다. 스페인 식민지로서 대만도 남부에 주군한 네덜란드인들의 견제로부터 필리핀과의 역내무역(regional trade)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략정 중요성을 상실하고, 마닐라 주둔 스페인 당국이 마닐라 방어에 더 치중함에 따라, 스페인령대만 식민지는 단명하게 되었다. 17년 후인 1643년, 네덜란드인들이 스페인의 마지막 요새를 포위하고 함락시킴으로써 대만도 대부분은 네덜란드인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
1566년, 네덜란드인들이 합스부르크(Hapsburg) 왕가 출신 스페인 국왕 [[펠리페2세]](Felipe II)에 항거하여 봉기하였다. [[네덜란드 독립 전쟁]](the Eighty Years' War) 동안, 네덜란드공화국(the Dutch Republic)과 동맹국 잉글랜드(England), 프랑스(France)는 스페인의 해외 영토 일부를 공격하고 약탈하였다.
스페인인들은 포르투갈 리스본(Lisbon)에 기반을 둔 향료무역에서 네덜란드인들을 배척하였다. 네덜란드인들은 동인도제도(the Eas Indies)에서 직접 향료를 구하기 위하여 원정대를 파견하였다.
1580년, 스페인 국왕 펠리페2세가 포르투갈 왕위마저 계승•겸임하면서, 이베리아 스페인-포르투갈 통합 왕국이 수립된 가운데, 네덜란드 지역 17개 주가 포르투갈과 네덜란드-포르투갈 전쟁(the Dutch–Portuguese War)을 수행하고 있었다.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적이 되었다.
네덜란드의 대만도 식민화 과정은 필리핀을 포함한 아시아 내 스페인 식민 영토를 점령하기 위한 원정의 일부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네덜란드인들은 포르투갈인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점한 성채들을 공격하였다. 성채들 중 일부는 병력이 부족하였다. 포르투갈인들의 정주지 중 일부는 고립되어 있었기에 공격을 받으면 병력 보강이 힘들었으며, 따라서 각개격파 당하기 쉬웠다. 하지만 네덜란드인들은 큰 성과를 거두진 못하였다.
1600년 12월 14일, 아시아로 가는 무역항로를 새로 개척하기 위하여, 해적 올리비어 반 노르트(Olivier van Noort)가 이끄는 사략선 함대가 필리핀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필리핀에 온 최초의 네덜란드 사략선 함대였다. 네덜란드인들은 동아시아 해양무역을 장악하고자, 해적질과 사략 행위를 자주 일삼았다. 이들은 마닐라만(Manila Bay)과 인근을 포위하여 선박 왕래를 방해하거나 중국과 일본에서 와서 마닐라에서 무역하려고 한 삼판선(sampan)과 정크선을 노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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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무역 경쟁 하에, 네덜란드인들은 오늘날 대만 남부 안평(安平) 일대에 해당하는 타요완(Tayouan, '타이완'이라는 섬이름의 유래가 되는 곳이다)에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이곳에서 네덜란드인들은 스페인인들의 무역을 방해하렸다. 이러한 위협에 대항하여, 마닐라 스페인 식민당국은 대만 북부에 식민지를 수립하기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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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인들은 대만도 북동부 산티아고곶(Cape Santiago, 三貂角)에 상륙하였으나 방어에 적합하지 않음을 발견하고, 해안을 따라 서진하여 계롱(Keelong, 雞籠) 즉 오늘날 기륭(基隆)에 도착하였다. 항만이 깊고 방비가 잘 되어 있으며 어귀에 작은 섬이 하나 있어 정주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이곳에서 스페인인들은 대만도 내 최초의 정주지를 세우고 산티시마 트리니다드(Santissima Trinidad, '성 삼위일체'라는 뜻)라고 명명하였다. 성채가 섬과 부두에 모두 건설되었다.
1629년, 스페인인들은 담수(淡水, Tamsui) 지역에 산도밍고성채(Fort San Domingo)를 중심으로 두번째 기지를 건설하였다.
{{토막글|타이완}}
[[분류:동아시아의 옛 나라]]
[[분류:
[[분류:스페인의 옛 식민지]]
[[분류:스페인-중국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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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이란현의 역사]]
[[분류:누에바에스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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