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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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불교에 동그라미 하나 붙여서 유치하게 원불교이다.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것 처럼 표현하지만 사실 우리가 흔히 즐기는 양파링 과자에 비교해도 양파링에게 죄송해야할 정도로 종교가 근본이 없다. 단체활동보다는 개인적인 성공에 초점을 두는 이기적 사고를 갖추도록 교육하는 데에 초점을 둔다. 예를 들어 단체 활동을 할 때에는 여러 사람의 이익을 증진하는 것보다 자신의 숙제에 몰두를 한다.
==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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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시 ===
{{참고|박중빈}}
원불교의 역사는 1916년 교조(敎祖)인 소태산(少太山) 대종사(大宗師) [[박중빈]]의 대각(大覺)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개교(開敎)의 동기를 "물질이 개벽(開闢)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로 요약해서 표현했다. 이는 정신 문명의 주체성을 확립해서 물질문명을 올바른 방향으로 활용하여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이 원만하게 발전되는 새로운 세계를 지향함을 뜻한다.<ref name="글로벌백과">원불교,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박중빈은 1891년 [[전라남도]] [[영광군 (전라남도)|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릴때부터 우주의 자연현상과 인간의 만사에 궁금증이 컸다고 한다. 20세에 아버지가 죽은 뒤 심한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고행과 수도를 이어가던 가운데 1916년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ref nam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원불교">[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0670 원불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 그의 깨달음은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는 것으로<ref>[http://won.or.kr/bupmun/sub/daejong0101 대종경제 1 서품(序品) 1장], 원불교</ref> 여러 종교의 경전을 살핀 뒤 《[[금강반야바라밀경|금강경]]》에서 자신의 깨달음이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행적에 부합하므로 그것을 연원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ref>[http://won.or.kr/bupmun/sub/daejong0102 대종경제 1 서품(序品) 2장], 원불교</ref>
=== 초기 공동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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