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서 (1948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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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반응 ==
사람들은 모두 똥내태훈이 뒤졌다고 기뻐하였다.
이 사건에 대해 '차라리 뒤늦게나마 안두희가 죗값을 치렀다.'라는 반응과 "안두희 죽음에 연민은 아직도 없으며 진실규명이 남아 있다."라는 반응들이 나왔으며 박기서의 행동을 '제2의 독립운동가'로 칭송하는 평가도 나왔다. 반면 '안두희가 죽어 암살 사건의 배후가 가려지게 되었으므로 차라리 박기서는 애국자가 아니라 안두희 살해를 자행하였기에 오히려 배후를 감춘 암살 배후 은폐 방조자'이라는 평가도 있었고, '안두희 그가 만고 역적이라 하지만 중풍을 앓는 노인을 때려죽인 것은 명백한 [[린치|사형]](私刑, 린치)이 아닌가 그것을 먼저 짚어 보아야 할 것'이라는 비난도 나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102500329122005&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10-25&officeId=00032&pageNo=22&printNo=15919&publishType=00010 안두희 살해 각계의 반응], 경향신문, 1996-10-25 작성.</ref> 권중희 저서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가 박기서의 범행동기가 되었다는 것이 알려지자 주요 서점에 책을 구입할 수 있느냐는 시민들의 전화문의가 폭주하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102500329123007&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10-25&officeId=00032&pageNo=23&printNo=15919&publishType=00010 권중희 저 '역사의 심판...' 불티], 경향신문, 1996-10-25, 정길근 기자.</ref>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