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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철'''(鄭珉哲, [[1972년]] [[3월 28일]] ~ )은 전 [[KBO 리그|한국 프로 야구]] [[한화 이글스]]의 [[투수]]이자, 현 [[MBC 스포츠플러스]]의 야구 해설위원이다.
[[충청남도]] [[대전광역시|대전시(현 대전광역시)]] 출생으로 [[1992년]] [[대전고등학교|대전고]]를 졸업하고 고졸 지명으로 [[한화 이글스]]의 전신인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하였다. 입단 초기 등번호는 '55'번이었고, 150km/h 초반의 빠른 직구와 각도 큰 커브로 선발 투수진의 한 축을 담당했으며, 데뷔 첫 해 14승(13선발승), 이듬해 13승(모두 선발)을 거두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일본 프로 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적 후 일본에서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귀국했다.<ref>[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B21&newsid=01085686583229288&DCD=A20102 달인에게 묻는다 9 - 정민철의 '라이징 볼에서 아리랑 볼 까지'] 《이데일리》, 2007년 8월 20일 작성</ref>
[[2005년]] 등번호를 '23'번으로 바꿨다. [[2009년]] [[9월 10일]], [[한화 이글스]]는 그의 등번호 '23'번을 영구 결번 처리하기로 결정했다.<ref>[http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050016 한화, '정민철 23번 영구 결번' 결정] <<OSEN>>, 2009년 9월 10일.</ref>
[[2009년]] [[9월 12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5회 클리닝 타임에 그의 은퇴식이 치뤄졌다. 은퇴식에서 그는 팬들의 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코치로서의 포부를 말했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 8년 연속 10선발승 이상(92~96년 13선발승 97년 14선발승 98년 10선발승 99년 17선발승)(역대 연속 두 자릿수 선발승 최고 기록), 2점대 평균자책점, 109승(106선발승) 62패, 평균 투구 이닝 188이닝 등으로 기록을 남겼다.
또한 1990년대 전체에서 보았을 때, 선발 투수 중 평균자책점(2.80), 완투(60), 완봉승(19),선발승(106) 1위를 했으며, 그가 데뷔한 1992년도부터 1999년까지 다승, 탈삼진, 이닝, 방어율, WHIP, 완투, 완봉승, 선발승 모두 그가 1위를 기록했다. 이 기록에서 나타나듯이 그는 1990년대 최고의 선발 투수로 평가받고 있다.
[[선동열]]은 자신의 후계자로 그를 지목했으며, [[이종범]]은 본인이 경험한 최고의 공으로 그의 직구를 꼽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44&article_id=0000242062 당신이 경험한 '최강의 직구'는 무엇입니까?] 《스포츠경향》, 2014년 4월 22일 안승호 기자</ref>
그리고 [[박경완]]은 자신이 받아 본 공들 중에서 최고는 그의 직구였다고 말했다.<ref>[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DH11&newsid=01971286583166640&DCD=&OutLnkChk=Y 박경완 "내 생애 최고의 공은 정민철"] {{웨이백|url=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DH11&newsid=01971286583166640&DCD=&OutLnkChk=Y |date=20150923233828 }} 《이데일리》, 2007년 6월 29일 정철우 기자 작성</ref>
 
== 선수 시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