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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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현'''(朴斗鉉)이다.
'''박두성'''(朴斗星, [[1888년]] [[4월 26일]] ([[음력 3월 16일]])~[[1963년]] [[8월 25일]])은 [[일제강점기]]의 한글 점자(點字)를 창안한<ref>{{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0020653}}</ref> [[대한민국]]의 교육자로, 본명은 '''박두현'''(朴斗鉉)이다.
 
3남(박순두었다.
본관은 [[무안 박씨|무안]], 자는 두성(斗星), 호는 송암(松庵)이며, [[경기도]] [[교동군|교동부]] 동면 상방리 월정(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달우물마을) 출신이다. 일제 강점기에 박두성은 시각장애인을 가르치는 교사로 활동했다. 박두성은 최초의 한국 점자 '훈맹정음'을 만들었다.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손가락으로 더듬어 읽는 문자다. 슬하에 3남(박순봉, 박순대, 박희복) 2녀(박정희, 박명희)를 두었다.
 
== 경력 ==
=== 교육 ===
지냈다.
[[1906년]] [[경기고등학교|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같은 해 어의동 보통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 후 [[1913년]]부터 [[1935년]]까지 [[제생원]] 맹아부 교사를 지냈으며 [[1936년]]부터 [[1940년]]까지 인천 영화학교 교장을 지냈다.
 
=== 점자 문서 ===
박두성은 그 자신이 말했듯이 점자로 옮겨 쓴 문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ref>교육방송 e-지식채널 [[2010년]] [[11월 6일]]자</ref> [[1913년]]에는 한국 최초의일본어 점자 교과서를 [[일본어|어 점자]]로 옮겨서 출판했으며 [[1920년]]에는 [[한글 점자]] 연구에 착수, [[1926년]]에 훈맹정음(訓盲正音)을 창안, 반포했다. 그 후 [[1931년]] [[성경|성서]] 점역에 착수하였으며 [[1941년]]에 [[신약성경|신약성서]] 점역을, [[1957년]]에 성서 전체([[구약성경|구약성서]]·[[신약성경|신약성서]]) 점역을 완성했다.
 
=== 시상 ===
.
박두성 본인은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지만, 사회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교육]]에 기여한 그를 존경했다. [[1962년]]에 [[국민포장]]을 수여받았으며 그가 사망한 이후 [[1992년]] 10월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한민국의 훈장#문화훈장(文化勳章, Order of Culture Merit)|은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다.
 
== 외부 링크 ==
*
* [http://www.songam.net/ 송암 박두성 기념관]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