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진남북조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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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 초반 [[후한]]은 [[황건적의 난]]으로 인해 매우 어지러웠다. 이에 이것을 진압하고자 지방호족들이 일어나게 된 것이 [[위진남북조]]의 시작이다.
[[조조]]가 황제를 옹립하고, [[원소]]와의
후에 [[관우]]가 위와 오의 공세로 붙잡혀 처형당하고, 형주마저 빼앗기자 분개한 [[유비]]가 [[오나라]]를 침공하지만 이릉에서 대패하여 후퇴하고, [[유비]]마저 [[제갈량]]에게 국정을 맡기고 병사한다. [[제갈량]]이 [[출사표]]를 내어 여러차례 북벌에 나서지만 실패하고, [[제갈량]]이 죽은 뒤 삼국은 싸움을 잠시 멈춘다.
263년 위군의 대공세에 [[촉한]]이 항복하고 [[위]]를 계승한 [[서진|진나라]](晉)가 [[오]]를 침공하면서 진이통일한세을 통일한다. 하지만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은 어리석은 군주로 변해 정치를 소홀히 하고 여덟 왕족이 [[팔왕의 난]]을 벌이자 진은 빠르게 몰락한다. 결국 이민족의 침략을 받아 [[서진]]은 멸망하고, [[사마예]]가 양자강 이남에 동진을 건국했지만
[[5호16국]] 이 후 북중국은 유목민족이 남중국은 한족이 정권을 세우고 분열의 시기를 맞으니 이게 [[남북조 시대]]이다. 북주 대승상이였던 [[양견]]이 [[수나라]]의 황제가 되고 남조를 침공하여 멸망시킴으로써 [[수나라]]는 남북조시대를 통일하게 된다. [[후한]]이 멸망하고부터 [[수나라]]가 통일하기까지를 합친 것을 [[위진남북조시대]]라고 한다. 여기까지가 [[위진남북조]]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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