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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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 ==
있다.
[[파일:Hallasan.jpg|섬네일|250px|서귀포 쪽에서 바라본 한라산 원경|left]]
 
왔다.
한라산은 과거부터 제주는 물론 한국 육지에서도 신성하게 여겨져 온 산으로, 전설상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불려오기도 했다. 조정에서 해마다 산정에서 국태민안을 비는 [[산제]](山祭)를 지냈는데, 산제를 지내러 갔던 백성들이 동사하기도 하였다. 이에 1469년(예종 1) 목사 이약동(李約東)은 지금의 [[산천단]](山泉壇)에 산신묘를 세우고 이곳에서 산제를 지내도록 하여 그 [[한라산신제단|석단]]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전해진다.
한라산은 예로부터 가마오름(釜岳)·원산(圓山)·진산(鎭山)·선산(仙山)·두무오름(頭無岳)·영주산(瀛洲山)·부라산(浮羅山)·혈망봉(穴望峰)·여장군(女將軍) 등의 많은 이름으로 불려 왔다.
 
보인다.
한라산이라는 이름에서 한(漢)은 은하수(銀河水)를 뜻하며, 라(拏)는 잡을 라 로서, 산이 높으므로 산정에 서면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다는 뜻에서 왔다고 전해진다.
 
한다.
진산이란 보통 도읍의 뒤에 위치하여 그 지방을 편안하게 지켜준다는 의미를 가진다. 한라산을 진산이라고 불렀던 까닭은 한반도로 밀려오는 남태평양의 큰 바람을 한라산이 막아주어 한반도의 안녕을 지켜 주기 때문이다. 또한 원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중앙이 제일 높아 무지개 모양으로 둥글고, 사방 주위가 아래로 차차 낮아져 원뿔 모양을 이루기 때문에 붙여졌다. 맑은 날 해남이나 진도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면 산 전체가 완만한 원뿔로 보인다.
 
있다.
영주산이란 중국의 ≪사기 史記≫에서 유래한다. 바다 가운데에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 등 삼신산이 있는데, 그곳에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약초가 있어 신선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진시황(秦始皇)은 서기 전 200년경 역사(力士) 서불(徐市)에게 그 약초를 구해 오도록 명하였다고 한다.
 
있다.
두무오름이란 머리가 없는 산을 의미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한 사냥꾼이 산에서 사냥을 하다가 잘못하여 활끝으로 천제(天帝)의 배꼽을 건드렸는데, 이에 화가 난 천제가 한라산 꼭대기를 뽑아 멀리 던져 버렸다고 한다. 이 산정부가 던져진 곳은 지금의 산방산(山房山)이며, 뽑혀서 움푹 팬 곳은 백록담(白鹿潭)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마오름이란 산정의 깊고 넓은 분화구가 연못으로 되어 있어 마치 가마솥에 물을 담아 놓은 것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이 연못은 성록(聖鹿)인 흰 사슴이 물을 마시는 곳이라 하여 백록담이라고 하였다. ≪세조실록≫에 의하면 1464년(세조 10) 2월에 제주에서 흰 사슴을 헌납하였다(濟州獻白鹿)고 기록되어 있다.
 
한다.
예로부터 산 정상에 오르면 멀리 남쪽 하늘에 있는 노인성(老人星)을 볼 수 있었으며, 이 별을 본 사람은 장수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정조 연간에 간행된 읍지에 의하면, 한라산을 등산하는 데는 대정현 쪽으로 험한 산길이 하나 있어서 사람들이 이를 따라 수목 사이를 헤치며 올라가는데, 위에서 소란을 피우면 곧 운무가 사방을 덮어버려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였다 한다.
 
또한, 5월에도 눈이 남아 있어 얼음이 필요하면 산에 올라가서 가죽 부대로 운반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녹담만설(鹿潭晩雪)이라는 것으로 제주 10경 중의 하나이다.
 
==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