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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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친하게 지냈던 인물인 [[박제가]]는 후일 홍대용의 외재종손인 [[김정희]]가 다시 [[박제가]]의 문하생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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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경 방문 ===
[[1765년]](조선 영조 41년) 35세 때 숙부인 홍억(洪檍)이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갈 때 군관(軍官)으로 수행, 3개월여를 북경에 묵으면서 엄성(嚴誠), 반정균(潘庭筠), 육비(陸飛) 등을 만나 담론하며 경의(經義), 성리(性理), 역사, 풍속 등에 대하여 토론했다. 한편 [[천문학]]·[[지리학]]·[[역사]] 등에 관한 지식을 쌓고 [[서양]] 문물을 배우고 돌아왔다. 또 천주당(天主堂)에서 서양 문물을 견학, 학습하고 [[독일]] 사람으로 [[청나라]]의 흠천감정(欽天監正)을 하는 할레르슈타인(劉松齡)과 흠천감 부감(副監) 고가이슬(鮑友管) 등을 만나 면담했으며, [[청나라]] 관상대(觀象臺)를 여러 번 방문, 견학하여 천문지식을 습득해 오기도 했다. 홍대용의 이와 같은 북경 방문은 당시의 여러 북학파 학자 중에서도 제일 처음의 일로서 실학의 도입에서 그 선구적 업적이 크다.
 
=== 귀국 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