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역사 연표

본 항목은 한글의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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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7(태조6) 음력 4월10일(양력 5월15일) 이방원의 셋째 아들(세종)이 태어남.
1398(태조7) 태조가 이방과(정조)에게 왕위를 물림.
1400(정종2) 정종이 이방원(태종)에게 왕위를 물림.
1418(태종18) 태종이 세자 충녕 대군(세종)에게 왕위를 물림.
1422(세종4) 세종이 활자의 글씨체를 고쳐 만들게함
1440(세종22) 세종이 교서관의 글자 연구를 장려함.
1443(세종25) 음력 12월 세종이 몸소 '훈민정음'을 만듦.
1444(세종26) 세종이 최항, 박팽년, 신숙주, 이선로, 이개, 강희안들에게 "운회(韻會)"를 한글로 번역하게 함.
1445(세종27) 세종이 신숙주, 성삼문, 손수산 들을 요동에 보내어 운서를 질문하게 함. 권제, 정인지, 안지 등이 "용비어천가" 125장을 지음.
1446(세종28) 음력 9월 상순 "훈민정음" 펴냄.

세종이 대간(臺諫)의 죄를 훈민정음으로 써서 의금부와 승정원에 보임. 언문청을 둠. 훈민정음을 이과(吏科)와 이전(吏典)의 시험 과목으로 정함.

1447(세종29) "용비어찬가"를 풀이함.

관리 시험에서 훈민정음 과목을 먼저 치르게 함.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 동국정운"들을 짓고, "용비어천가"를 펴냄.

1448(세종30) "동국정운"을 펴냄.
1449(세종31) 운서를 교열하기 위해서 신숙주, 성삼문 등이 중국 사신의 숙소에 찾아 다님.
1450(세종32) 성삼문, 신숙주, 손수산 들이 명나라 사신에게 운서에 대해 질문함.

음력 2월 17일(양력 4월 8일) 당대에 '해동의 요순'이라 일컬음 받던 세종 큰 임금이 돌아감.

1504(연산군10) 연산군의 잘못을 지적하는 한글문서 사건이 나서, 한글 가르치기를 금하고 한글로 된 책들을 불사르게 함.
1506(중종1) 언문청을 없앰.
1592(선조25) 임진왜란 일어남.
1636(인조14) 병자호란 일어남.
1876(고종13) 12월 22일 주시경(상호) 태어남.
1887(고종24) 로스(J. Ross)의 "예수 셩교 젼셔" 펴냄.
1890(고종27) 주시경이 국어 공부와 연구를 시작함.
1894(고종31) 갑오경장. 7월 8일 외국의 나라, 땅, 사람의 이름들을 한글로 적도록 하는 법령이 공포 됨.

11월 21일 칙령으로 법률과 칙령에서 국문 곧 한글로 적기를 중심으로 하고 한자를 덧붙이거나 섞을 수 있도록 규정함.

1896(건양1) 4월 7일 처음으로 한글만 쓰는 신문 "독닙신문"이 독립 협회에서 창간됨.

5월 주시경이 한글맞춤법의 통일을 위한 '국문 동식회' 모음.

1897(건양2) 주시경이 "국어 문법" 지음.
1905(건양9) 지석영이 "신정 국문" 펴냄.
1906(건양10) 주시경이 "대한 국문 문법" 펴냄.
1907(순종1) 학부에서 국문 연구소 세움. 주시경이 '하기 국어 강습소' 엶.
1908(순종2) 8월 31일 '국어 연구 학회' 첫 모임.

12월 16일 주시경이 국문 연구소에 낸 "국문 연구안"에서 한글 풀어쓰기를 처음 주장함. 주시경이 "국어 문전 음학", 최광옥 "대한 문전" 펴냄.

1909(순종3) 김희상이 "초등 국어 사전", 유길준이 "대한 문전" 펴냄.
1910(순종4) 일본이 조선 삼킴. 주시경이 "국어 문법" 펴냄.
1911(왜정) 9월 3일 국어 연구 학회를 '배달 말글 몯음(조선 언문회)'으로 바꿈.
1912(왜정) 조선 총독부 학무국이 "보통학교 언문 철자법" 펴냄.
1913(왜정) 3월 23일 배달 말글 몯음을 '한글모'로 바꿈.
1914(왜정) 주시경이 "말의 소리" 펴냄.
1919(왜정) 삼일 독립 운동 1920(왜정) 조선 총독부가 "조선어 사전" 펴냄.
1921(왜정) 12월 3일 조선 총독부의 탄압으로 흩어졌던 한글모가 '조선어 연구회'로 다시 모임.

총독부 학무국이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 대요" 펴냄.

1924(왜정) 2월 1일 조선어 연구회에서 '훈민정음 8 회갑 기념회'를 엶.
1926(왜정) 11월 4일 조선어 연구회에서 훈민정음의 반포를 기념하는 '가갸날(음력 9월 29일)'을 정하고 기념함.
1927(왜정) 2월 8일 조선어 연구회의 월간 동인지 "한글" 창간됨.
1928(왜정) 11월 11일 가갸날을 '한글날'로 바꿈.
1929(왜정) 10월 31일 조선어 연구회 월례 모임에서 한글 가로 풀어쓰기를 토론함.
1931(왜정) 1월 10일 조선어 연구회를 '조선어 학회'로 바꿈.
1932(왜정) 10월 29일 조선어 연구회의 기관지 "한글" 다시 펴냄.
1933(왜정) 10월 29일 조선어 학회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 펴냄.
1934(왜정) 10월 28일 조선어 학회에서 훈민정음 반포일을 그레고리오력으로 환산해서 10월 28일로 한글날을 삼음.
1935(왜정) 박승빈이 "조선어학" 펴냄.
1936(왜정) 10월 28일 조선어학회의 "사정한 조선어 표준어 모음" 펴냄.
1937(왜정) 11월 28일 조선어 학회에서 '한글 가로 풀어쓰기안' 채택함. 최현배의 "우리말본" 펴냄.
1938(왜정) 학교에서 조선말 교육이 금지됨.

김윤경이 "조선 문자 급 어학사" 펴냄.

1940(왜정) 6월 25일 조선어 학회에서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발표함.

10월 9일 "훈민정음" 원본이 발견됨에 따라 한글날을 새로 고증해서 10월 9일로 바꿈.

1942(왜정) 10월 1일 조선어 학회 수난 사건 일어남. 최현배의 "한글갈" 펴냄.
1945(미국 군정) 8월 15일 조선의 광복.

9월 1일 조선어 학회에서 각종의 국어 교과서를 지어서 군정청 학무국에 줌. 12월 8일 군정청 학무국 조선 교육 심의회 교과서 분과에서 '한자는 없애고 모든 글은 가로쓰기'로 결정함.

1947(군정) 10월 9일 조선어 학회의 "조선말 큰 사전" 첫 권 펴냄.
1948(대한민국)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세움.

8월 6일 문교부에서 '한자 안 쓰기의 이론' 펴냄. 10월 9일 '한글 전용에 관한 법률'이 공포됨.

1949 9월 5일 조선어학회를 '한글학회'로 바꿈.
1950 6월 25일 사변 일어남.
1953 4월 27일 국무총리 훈령 제8호 '한글 간소화 안'이 공포됨.
1953 5월 24일 한글학회 등에서 한글 간소화 안에 대한 반대 성명 냄.
1954 7월 2일 국무회의에서 한글 간소화 안을 통과시지자, 각계에서 반대 성명 냄.
1955 9월 19일 대통령이 한글 간소화 안을 거두어 들임.
1956 10월 9일 세종 대왕 기념 사업회 세움.
1957 12월 6일 국무회에서 '한글 전용 적극 추진에 관한 건'이 의결 됨.
1962 2월 5일 문교부 안에 '한글 전용 특별 심의회'가 생김.
1964 9월 1일 모든 국어 교과서를 통해서 한자를 노출시켜 가르치기로 함.
1968 5월 2일 국무회에서 한글 전용 5개년 개획(안)이 의결되고, 이어 1970년부터 한글 전용을 실시하기로 결정됨.
1972 9월 한글학회의 기관지 "한글 새 소식" 창간됨.
1979 9월 8일 한글학회에서 '한글 글자꼴 연구 모임'을 엶.
1980 8월 28일 한글학회에서 종래의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수정하고 "한글맞춤법"으로 펴냄.
1981 12월 12일 주시경 스승의 무덤이 동작동 국립묘지 제 2 유공자 묘역으로 옮겨 짐.
1982 12월 3일 한글학회 안에 '한글 풀어쓰기 연구 모임'을 만듦.
1984 5월 10일 국어 연구소 세워 짐.
10월 30일 국어 연구소의 기관지로 "국어 생활" 창간됨.
1986 12월 3일 한글학회 안에 "한힌샘(주시경) 연구 모임"을 만듦.
1987 3월 정보 교환용 한글 완성형 표준 코드가 제정됨.
4월 16일 '한글 문화 단체 모두모임'이 세워 짐.
12월 22일 '주시경 연구소' 세워 짐.
1988 1월 14일 문교부에서 국어 연구소를 통해 종래의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간소화의 방향으로 수정한 "한글맞춤법"을 제정하고 공포함.
7월 27일 주시경 연구소의 기관지 "주시경 학보" 창간됨.
1990 7월 4일 '국어 정보학회' 세워 짐.
1991 1월 23일 국어 연구소가 국립국어연구원으로 승격함.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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