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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전라우수영

대한민국 전라남도 해남군에 소재한 사적 제535호. 조선시대의 수군 병영

해남 전라우수영(海南 全羅右水營)은 대한민국서해남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 명량대첩의 배후기지로 활용되었던 역사적인 유적이다. 1992년 3월 9일 전라남도의 기념물 제139호 전라우수영성지로 지정되었다가, 2016년 9월 30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535호 해남 전라우수영으로 지정되었다.[2][3][A]

해남 전라우수영
(海南 全羅右水營)
(Navy Headquarter Protecting Western Region of Jeolla-do Province, Haenam)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사적
종목사적 제535호
(2016년 9월 30일 지정)
면적166,622m2
수량362필지
시대조선시대
관리전남 해남군
위치
해남 전라우수영 (대한민국)
해남 전라우수영
주소전라남도 해남군 남문길 25-2 (문내면)
좌표북위 34° 35′ 27″ 동경 126° 18′ 21″ / 북위 34.59083° 동경 126.30583°  / 34.59083; 126.30583좌표: 북위 34° 35′ 27″ 동경 126° 18′ 21″ / 북위 34.59083° 동경 126.30583°  / 34.59083; 126.30583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전라우수영성지
(全羅右水營城址)
대한민국 전라남도기념물(해지)
종목기념물 제139호
(1992년 3월 9일 지정)
(2016년 9월 30일[1] 해지)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전라우수영성지편집

고려 말기 우왕 3년(1377) 전라남도 무안 당곶포에 수군처치사영(水軍處置使營)이 설치된 뒤, 조선 세종 22년(1440)에 현 위치인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황원곶으로 이를 옮겼다. 세조 11년 (1465)에 수군절도사영(水軍節度使營)으로 승격되었고, 성종 10년(1479) 전라남도 순천 내례포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된 후 이곳은 전라우도 수군절도사영이라 부르게 되었다.

처음의 영역은 남북 길이 10리, 동서 너비 5리의 크기이며, 석축의 둘레는 3,843척, 높이 11척, 연못 3개소가 있었다. 『전라우수영지』에 의하면 영내에는 민가 620호, 수군 병력 1,085명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전라우도 연해지역 14관을 관할하였을 만큼 군사적인 규모와 역할이 매우 컸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수사 김억추는 통제사 이순신과 더불어 명량대첩을 거두었다.

해안선을 따라 가며 쌓은 전라우수영은 돌과 흙을 섞어 쌓은 혼합형으로, 사각형과 원형의 중간 형태를 띄고 있다. 성벽을 쌓은 아래쪽의 돌은 150cm 이상이 되는 큰 것들이나 올라가면서 30∼50cm 정도로 작아진다.

해남 전라우수영편집

해남 전라우수영은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군사적 요충지에 자리 잡은 조선 시대 전라우도 수군의 본영이다. 앞바다는 물살이 빠른 명량해협을 이루고 있고, 그 안쪽은 양도(洋島)라는 섬이 울돌목의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해주는 동시에 외부로부터 전라우수영을 가려주고 있어 천혜의 요새를 이룬다.

1440년(세종 22)에 수영을 목포에서 이곳 해남으로 옮기면서 전라도 수군을 총괄하는 전라수영으로 운영되었고, 1479년(성종 10)에 전라도 순천부(順天府) 내례포(內禮浦, 현 전남 여수)에 전라좌수영이 설치되면서 전라우수영으로 개편된 이래 1895년까지 지속되는 등 조선 시대 수군제도의 변화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정유재란 때에는 세계적인 해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명량대첩의 배후기지로 이용되었다.

전라우수영성은 16세기 중반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깥쪽은 돌로 쌓고 안쪽은 흙으로 다져 쌓은 내탁식 석성(內托式 石城)으로 평면 형태는 배 모양(舟形)에 가깝다. 위상에 걸맞게 4개의 성문과 옹성(甕城), 치성(雉城), 여장(女墻), 수구문(水口門) 등 다양한 부대시설과 십자(十字)형의 성내 도로망을 중심으로 관아건물과 창고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에 전하고 있다.

또한, 동쪽으로 7㎞ 떨어진 가장 목이 좁은 곳에는 육지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한 차단성인 원문(轅門)을 쌓은 것이 특징이다.

사적 승격사유편집

조선시대 수군체제의 변화와 발전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관방시설(關防施設)[B]로서 군제사, 성곽사 연구 등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3]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내용
  1. 전남 해남군 문내면 서상리 109-1 일원의 362필지 166,622m2 (문화재구역 58필지 17,598m2, 보호구역 304필지 149,024m2)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2. 관방시설(關防施設) : 변방의 방비를 위하여 설치한 설비, 도구, 기계, 장치 따위.
출처
  1. 전라남도 고시 제2017-344호, 《전라남도 기념물 지정해제 고시》, 전라남도지사, 도보 제2017-45호, 298-300쪽, 2017-09-28
  2. 문화재청장 (2016년 9월 30일). “문화재청고시제2016-86호(해남 전라우수영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지정)” (PDF). 관보 제18854호 (PDF). 334-353쪽. 2016년 10월 13일에 확인함. 
  3. 문화재청 (2016년 9월 30일). “명량대첩의 배후기지 「해남 전라우수영」사적 지정”. 《korea.kr》. 2016년 10월 1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6년 10월 13일에 확인함.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