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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욱(許煜, 1827년 ~ 1883년)는 조선시대 후기의 유학자이자 흥선대원군의 가인, 측근이었다. 이재선의 모역 사건으로 승지 안기영대원군의 측근들이 다수 살상되었을 때도 그는 살아남았으며, 임오군란의 주동자의 한사람이었다.

흥선대원군의 적장손이자 고종(高宗)의 정적인 영선군 이준용(李埈鎔)의 스승이었다. 임오군란 관련 혐의로 역적으로 몰려 단죄되었으나, 1907년 11월부터 이완용의 건의로 1908년 4월 명예회복되었다.

생애편집

학식이 있었으나 그는 일찍부터 흥선대원군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이준용은 임오군란 이전에 허욱이란 유생을 독선생으로 모시고 글을 배웠다고 한다.[1][2] 그는 일찍부터 대원군의 식객이자 가인으로 활동했다.

이재선의 역모 사건 때 민씨 정권 정객들에 의해 체포령이 떨어졌으나 극적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건졌다. 이후 그는 흥선대원군이준용의 추대 운동에 동참한다.

허욱은 임오군란 때 병사 복장을 하고 대궐로 들어가 명성황후를 가리켜 주는 역할을 맡았다가 군란이 진압된 다음에 죽임을 당하였다.[1]

사후편집

1908년(융희 2년) 4월 30일에야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의 건의로 복권되었다.[3] 1908년(융희 2년) 1월 이완용 등의 건의로 작위와 시호가 회복되었다.[4]

1908년 4월 죄적에서 삭제되고 명예회복되었다.[3]

각주편집

  1. 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312쪽.
  2. 정교, 대한계년사 상 (국사편찬위원회, 1971) 16쪽
  3. 순종실록 2권, 순종 1년(1908 무신 / 대한 융희(隆熙) 2년) 4월 30일(양력) 3번째기사 "죽은 좌의정 한효순 외 77명의 관작을 회복시켜 줄 것에 관하여 보고하다"
  4. 순종실록 2권, 순종 1년(1908 무신 / 대한 융희(隆熙) 2년) 1월 30일(양력) 4번째기사 "한효순, 정인홍 등에게 죄명을 벗겨주고 작위와 시호를 회복시켜 주다"

관련 항목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