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현(慧現 또는 慧顯: 570~627)은 백제의 승려이다.[1] 혜현은 당나라에 간 일은 없으나,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당나라649년도선(道宣: 596~667)에 의해 편찬된 《속고승전(續高僧傳)》(당고승전(唐高僧傳)이라고도 한다)에 그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1][2]

속고승전(續高僧傳)》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그의 전기는 다음과 같다:[1][2]

혜현은 어려서부터 불도에 전념하여 《법화경》과 삼론을 깨우치고 신명에 통하였다. 수덕사에 있으면서 강론을 했는데 사방에서 사람이 모여와 집 밖까지 신발이 가득할 정도였다. 차차 번잡한 생활이 싫어져 강남달라산에 들어가 정좌하며 일생을 마쳤다. 혜현이 죽은 후 시체를 석굴 안에 두었는데, 호랑이가 와서 다 먹어버리고 만 남겼다. 3년이 지나자 가 돌처럼 굳어져서 이를 돌탑 속에 간직하였다.

이 전기에서 만 생생히 살아남았다는 것은 이야기는 《법화경》을 독송한 공덕에 따른 것이라는 영험설화(靈驗說話)에 해당한다.[3] 그런데 이 같은 유형의 설화는 일찍부터 널리 있었던 것으로 《법화영험전(法華靈驗傳)》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다수 실려있다.[3]

각주 편집

  1. 인명사전 > 한 국 인 명 > ㅎ > 혜현,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 당(唐) 도선(道宣) (649년). "백제국 달라산사 석혜현 전6(伯濟國達拏山寺釋慧顯傳六)" Archived 2011년 5월 17일 - 웨이백 머신, 《속고승전(續高僧傳)》 제28권, 대정신수대장경, T50 No. 2060. T50n2060_p0685c22(00), T50n2060_p0687c09(00) - T50n2060_p0687c19(05). 2011년 3월 23일에 확인:
    伯濟國達拏山寺釋慧顯傳六
    釋慧顯。伯濟國人也。少出家。苦心精專。以誦法華為業。祈福請願。所遂者多。聞講三論便從聽受。法一染神彌增其緒。初住本國北部修德寺有眾則講無便清誦。四遠聞風造山諠接。便往南方達拏山。山極深險重隒巖固。縱有往展登陟艱危。顯靜坐其中專業如故。遂終于彼。同學輿屍置石窟中。虎噉身骨並盡。惟餘髏舌存焉。經于三周其舌彌紅赤。柔軟勝常。過後方變紫[革*更]如石。道俗怪而敬焉。俱緘閉于石塔。時年五十有八。即貞觀之初年也。
  3. 안계현 (1983). 《한국불교사상사연구》, 동국대학교 출판부, p.18.

참고 문헌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