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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국(胡安國, 후안궈, 1074년 ~ 1138년)은 중국 송나라에서 관료를 지낸 고려의 유학자이다. 자(字)는 강후(康候). 파릉 호씨(巴陵 胡氏)의 시조이기도 한 그는 《춘추호씨전(春秋胡氏傳)》의 저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고려 시대 관료 겸 저술가 추적(秋適)과 명나라 시대 관료저술가 범입본(范立本, 본명: 범근(范瑾))과 청나라 시대 향리 관료 겸 저술가 홍응명(洪应明)과 청나라 시대 저술가 겸 향리 태수 황종희(黃宗羲)도 모두 그의 직간접성 영향을 받았다.

호안국
胡安國
송 제국 황궁 예문관 소급사 겸 강독교관
(前 宋 帝國 皇宮 藝文館 小給事 兼 講讀敎官)
임기 1098년 ~ 1101년
군주 송 철종 조후
송 휘종 조길
고려국 서해도 장연군 태수
(前 高麗國 西海道 長淵郡 太守)
임기 1109년 ~ 1138년
군주 고려 예종 왕우
고려 인종 왕해
신상정보
출생일 1074년
출생지 송나라 푸젠 성 충안
사망일 1138년 (향년 65세)
사망지 고려 개경 벽란도에서 객사
거주지 송 제국 볜징
송 제국 린안
본관 파릉(巴陵)
정당 무소속
부모 아버지 호숭평(胡崧平)
형제 이복 서제 호종적(胡從迪)
배우자 본부인 1명, 측실 1명
자녀 슬하 5남 4녀
(적장녀 호신(胡申),
서자 호유(胡諭),
적장자 호인(胡寅),
적차남 호영(胡寧),
적삼남 호굉(胡宏)
)
친인척 이복 조카 호준창(胡俊昌)
이복 조카 호인영(胡仁穎)
종교 유교
웹사이트 후안궈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목차

생애편집

생애 초반기편집

원래 중국 송나라 푸젠 지방 충안의 중급 귀족 집안에서 슬하 6남 3녀 중 적출 차남(嫡出 次男)으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송나라 푸젠 성 바닝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송나라 푸젠 성 난핑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일찍이 1193년 음서로써 송나라 관료에 천거되어 이복 서출 남동생 호종적(胡從迪)과 함께 송나라 관료 직책을 지냈었다.

송나라 관료 사퇴 후 고려국 귀순편집

송나라 관료 시절에도 이미 《춘추(春秋)》라는 유교 경전을 독파하고 《춘추호씨전(春秋胡氏傳)》을 저술한 그는 본부인 1명과 측실 1명 사이에서 모두 슬하 5남 4녀 등의 아홉 자녀를 두었는데 송 철종 조후(宋 哲宗 趙煦) 붕어 이후 송 휘종 조길(宋 徽宗 趙佶) 치세 때 송나라 수도 볜징에서 관료로 임직하던 중 송나라의 심각한 유교 성향 관련 제도권 체제에 환멸 섞인 회의감을 느리면서 1101년 사퇴 후 송나라 푸젠 성 푸저우에 낙향하였는데 한편 그의 이복 서제(異服 庶弟)인 호종적(胡從迪) 공도 그와 함께 1101년에 송나라 관료 직책을 사퇴하여 푸젠 성 푸저우에 냑항을 하였으며, 5년 후 1106년에는 서자(庶子)인 호유(胡諭), 그리고 이복 조카 호준창(胡俊昌)과 호인영(胡仁穎)을 비롯하여 이복 조카 호준창(胡俊昌)과 호준창 슬하 두 아들인 호결량(胡潔凉), 호협(胡浹), 이복 서제 호종적(胡從迪)의 사돈인 원래 고려국 북계 지방 의주 호족 출신 정치가 겸 외교관 김선영(金善英) 공, 송나라 허난 중급 귀족 황보첩걸(皇甫捷杰)과 황보 정(皇甫 靖) 공 등과 함께 이토록 어언 아홉 명의 직계 일가족과 세 명의 방계 친인척들이 푸저우를 떠나 1106년 상선(商船)을 타고 고려에 처음 왔다. 그리고 3년 후 그는 1009년 고려국 서해도 장연군 태수 직책에 제수되어 일평생 서해도 장연군 태수를 지냈다.

생애 후반편집

그 후 먼 훗날 1136년에 호안국(胡安國)은 송 고종 조구(宋 高宗 趙構)의 남송 제국 초청장을 받으면서 남송 제국 수도 린안을 예방(禮訪)하였으며 그에 이어 잠시 남송 제국 푸젠 성 푸저우를 거쳐 남송 제국 후난 성 형산(衡山)을 다녀오면서 고려(高麗)에 재귀하던 도중 1138년 고려국 개경 벽란도 사저에서 별세하였다.

사후편집

호안국(胡安國) 그의 사후, 먼 훗날 아직 중국 대륙 본토에 남아 있던 호안국의 주류 직계 후손 가운데 17세기 명나라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예부상서(禮部上書)를 지낸 중국 명나라 관료 호사표(胡士表)의 아들이었던 명나라 관료 호극기(胡克己)는 명 제국 말기에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내다가, 조선 인조 치세 시기였던 1644년 당시 명 제국 답례사절단(答禮使節團) 일원으로 조선에 입국하였다. 그런데 그 해 1644년 명나라가 결국 청나라의 압력을 받으면서 끝내 멸망하자, 이후 중원 땅에 환국하지 않은 채 조선에 거류 및 귀화하였다. 결국 호극기(胡克己)는 조선 땅에서 파릉 호씨의 중시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