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다 다케오
후쿠다 다케오(일본어: 福田赳夫, 1905년 1월 14일 ~ 1995년 7월 5일)는 일본의 정치인이며, 제67대 내각총리대신이다. 아들은 내각총리대신을 지낸 후쿠다 야스오이다.
후쿠다 다케오
福田 赳夫 | |
내각 공보실에서 공표한 초상 | |
일본의 제67대 내각총리대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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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 1976년 12월 24일~1978년 12월 7일 |
전임 | 미키 다케오(제66대) |
후임 | 오히라 마사요시(제68·69대) |
신상정보 | |
출생일 | 1905년 1월 14일 |
출생지 | 일본 군마현 군마군 가네코정 |
사망일 | 1995년 7월 5일 | (90세)
사망지 | 일본 도쿄도 기타구(도쿄여자 의과대학 부속 아오야마 병원) |
정당 | 자유민주당 |
서훈 |
경력
편집군마현에서 태어나 도쿄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1952년 총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돼 그 후 1958년 당 정조회장에 취임, 이듬해 간사장이 되었다.
1959년부터 1969년까지 농상, 1969년부터 1971년까지 대장상, 1971년부터 1973년까지 외상을 지냈다.
1976년 미키 다케오의 후임으로 제67대 일본의 총리가 되었으며, 그가 총리로 취임하는 동안 일본의 경제상황은 나빠졌으나, 외교적으로는 성공하였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포기, 경제 원조 등을 약속하기도 하였다. 1978년 총리직을 사임했으며, 총리 재임기간 중 중국과 평화우호조약(중일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남겼다. 베트남 전쟁 이후 그의 동남아시아에 대한 전향적 입장은 '후쿠다 독트린'으로 불리며, 그중에서도 반공의 기조를 유지하였으나 친미에 속하지는 않았다. 그의 아시아 중시 외교를 일컬어 '전방위 외교'라고 부른다.
총리직을 사임한 후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중의원을 지냈고, 민간외교 차원에서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으며, 이후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내는 등 한국과의 관계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1990년 정계를 은퇴, 5년 후인 1995년에 만성폐기종으로 사망했다. 2007년 9월 25일에 장남인 후쿠다 야스오도 제91대 총리로 취임하여 일본 최초로 부자 총리가 탄생하였다.
같이 보기
편집외부 링크
편집전임 미키 다케오 |
일본 자유민주당 정무조사회장 1958년 ~ 1959년 |
후임 나카무라 우메키치 |
전임 가와시마 쇼지로 |
일본 자유민주당 간사장 1959년 |
후임 가와시마 쇼지로 |
전임 시나 에쓰사부로 |
일본 자유민주당 정무조사회장 1960년 ~ 1961년 |
후임 다나카 가쿠에이 |
전임 다나카 가쿠에이 |
일본 대장대신 1965년 ~ 1966년 |
후임 미즈타 미키오 |
전임 다나카 가쿠에이 |
일본 자유민주당 간사장 1966년 ~ 1968년 |
후임 다나카 가쿠에이 |
전임 미즈타 미키오 |
일본 대장대신 1968년 ~ 1971년 |
후임 미즈타 미키오 |
전임 아이치 기이치 |
일본 외무대신 1971년 ~ 1972년 |
후임 오히라 마사요시 |
전임 하마노 세이고 |
일본 행정관리청 장관 1972년 ~ 1973년 |
후임 호리 시게루 |
전임 다나카 가쿠에이 |
일본 대장대신 1973년 ~ 1974년 |
후임 오히라 마사요시 |
전임 미우라 가즈오 |
일본 농림대신 1974년 ~ 1976년 |
후임 난조 노리오 |
전임 미키 다케오 |
일본 국무대신 (일본 부총리) 1974년 ~ 1976년 |
후임 이토 마사요시 |
전임 구라나리 다다시 |
일본 경제기획청 장관 1974년 ~ 1976년 |
후임 노다 우이치 |
전임 미키 다케오 |
제8대 자유민주당 총재 1976년 12월 23일 ~ 1978년 12월 1일 |
후임 오히라 마사요시 |
전임 미키 다케오 |
제67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1976년 12월 24일 ~ 1978년 12월 7일 |
후임 오히라 마사요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