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시미 천황(일본어: 伏見天皇, 1265년 5월 10일 ~ 1317년 10월 8일)은 제92대 일본 천황이다. 1287년에서 1298년까지 재위했다. 휘(諱)는 히로히토(熈仁)로, 쇼와 천황의 이름과 같지만 한자는 다르다. 고후카쿠사 천황의 차남으로 지묘인 황통에 속한다. '후시미'라는 시호는 퇴위 후 머무른 후시미 별궁의 이름을 본딴 것이다.

후시미 천황
伏見 天皇
제92대 일본 천황
재위 1287년 11월 27일-1298년 8월 30일
전임 고우다 천황
후임 고후시미 천황
섭정
재상
이름
히로히토 (熈仁)
시호 후시미 (伏見)
능호 후카쿠사 북릉 (深草北陵)
연호 고안 (弘安)
쇼오 (正応)
에이닌 (永仁)
신상정보
출생일 1265년 5월 10일
사망일 1317년 10월 8일
왕조 야마토 왕조
가문 지묘인 황통
부친 고후카쿠사 천황
모친 토우인 인시
배우자 사이온지 료코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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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히토 친왕은 숙부이자 다이가쿠지 황통인 고우다 천황의 황태자가 되었다. 여기에는 아버지이자 지묘인 황통의 고후카쿠사 천황의 정치적 영향력이 작용했다. 1278년 10월, 고우다 천황이 양위하자 히로히토 친왕은 천황으로 즉위했다. 2년 뒤 상황인 후시미 천황이 인세이를 그만두면서 후시미 천황은 친정을 시작했다. 1289년 후시미 천황은 자신의 아들(훗날의 고후시미 천황)을 황태자로 책봉했고, 이로 인해 다이가쿠지 황통과 갈등을 겪었다. 1290년에는 아사와라 다메요리의 일족이 후시미 천황의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1298년 후시미 천황은 아들 고후시미 천황에게 양위한 뒤 인세이에 나섰지만 고후시미 천황은 3년 만에 다이가쿠지 황통의 고니조 천황에게 양위했다. 1308년 후시미 천황은 막부와의 교섭 끝에 자신의 넷째 아들을 하나조노 천황으로 즉위시키고 다시 인세이를 했다.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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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궁 사이온지 쇼시 (에이후쿠몬인/요후쿠몬인)은 쿄고쿠파를 대표하는 대가인이고, 텐지 키타바타케 치카코는 칙찬집에 53수가 입집한 유력 가인이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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