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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마 오사무

후쿠마 오사무(일본어: 福間 納, 1951년 7월 13일 ~ )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야구 지도자, 야구 해설가·평론가이다. 시마네현 오다시 출신이며 현역 시절 포지션은 투수였다.

후쿠마 오사무
福間 納

Osamu Fukuma
기본 정보
국적 일본
생년월일 1951년 7월 13일(1951-07-13) (68세)
출신지 시마네현 오다시
신장 175 cm
체중 69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좌투좌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78년
드래프트 순위 1순위
첫 출장 1979년 4월 11일
마지막 경기 1990년 9월 27일
경력

선수 경력

감독·코치 경력


후쿠마 오사무
일본어식 한자 표기: 福間 納
가나 표기: ふくま おさむ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 후쿠마 오사무
통용 표기: 후쿠마 오사무
로마자: Osamu Fukuma

지도자 시절인 2000년부터 2001년까지 등록명은 福間 納一(동음)였다.

인물편집

프로 입단 전편집

시마네 현립 오다 고등학교에서는 2학년부터 팀의 에이스로서 활약하여 1968년 하계 고시엔 시마네현 예선에서 준결승에 진출했지만 하마다 고등학교에게 패했다. 이듬해 1969년에는 춘계 고시엔 대회에 출전하여 1차전에서는 에이스 이하라 신이치로를 거느리고 마루카메조세이 고등학교와 맞붙었지만 4대 9로 패했다. 그해 여름에 열린 시마네현 예선 준결승에서 고쓰 공업고등학교의 미사와 준 투수, 다카하시 히로시 포수로 구성된 배터리에 막혀 1대 4로 탈락, 고시엔 진출에는 실패했다.

졸업 후에는 마쓰시타 전기에 입사, 1970년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에이스로서 첫 등판했다. 이 대회에서 규슈 산교를 완봉하는 등 2승을 올리며 팀의 준준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그 후엔 한때 외야수로 전향했지만 1년 만에 투수로 복귀했고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1978년까지 8차례나 출전했다.

1970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1]에서 한큐 브레이브스로부터 7순위 지명을 받았지만 이 때는 입단하지 않고 1978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롯데 오리온스로부터 1순위로 지명돼[2] 27세의 나이로 입단했다.[3]

프로 입단 후편집

그러나 입단 직후에 팔꿈치 통증을 일으키는 등 뚜렷한 성적을 남기지 못한 채 롯데에 있을 당시에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1981년 시즌 도중에 후카자와 요시오와의 맞트레이드로 한신 타이거스에 이적하였고 주로 팀의 중간 계투로서 활약해 2년 후인 1983년에는 시즌 2.6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여 최우수 평균 자책점 타이틀을 석권했다.

1984년에 시즌 77경기에 등판하면서 센트럴 리그 신기록(당시)을 달성했으며 같은 해 이나오 가즈히사가 갖고 있던 시즌 등판 기록(78경기)에 육박하면서 이나오의 기록을 깰 수 있을지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때 프로 야구 기록의 조사 연구로 알려진 우사미 데쓰야는 당시 감독이었던 안도 모토오에게 편지를 보내 “이나오의 기록은 400이닝 이상 던지면서 만든 내용이 있는 기록, 중간 계투의 등판 형태만의 기록 경신은 다시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호소했다. 이 편지 내용에 따라 공을 세웠는가는 명확하진 않지만 결국 후쿠마의 등판 기록은 이나오보다 1경기 적은 77경기가 되었다.

1985년에는 팀의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도 큰 기여를 했는데 같은 해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4차전에 구원 투수로 등판, 9회 2사 2루인 상황에서 니시오카 요시히로로부터 결승 2점 홈런을 허용하면서 패전 투수가 되었다. 감독인 요시다 요시오는 다음날인 5차전에서도 후쿠마를 기용, 4회 1사 만루인 상황에 니시오카를 유격수 병살타로 막아내 승리 투수가 되었다. 같은 상황에서의 기용한 것에 대해 요시다 감독은 “한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실패해도 다음의 경기에서의 명예 회복을 위해 만회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선수에게 자신감을 갖게 한다는(특히 투수에게는 많았다) 당시 요시다 감독의 지휘 스타일 중의 하나였다.[4]

한편, 트레이드 상대였던 후카자와는 롯데에서 선발 투수로서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는 등의 활약하면서 ‘성공한 트레이드’의 예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야구계 일각에서의 평가도 있었다. 1990년에는 12년간의 현역 생활을 은퇴했다.

그 후편집

이후 마이니치 방송의 야구 해설위원을 역임했고(1991년에는 스포츠 닛폰의 평론가를 겸임)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현역 시절 친정팀이었던 한신 타이거스의 1군 투수 코치, 2001년에는 한신의 2군 투수 코치를 맡았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는 GAORA의 야구 해설위원을 역임했고 2011년에는 오릭스 버펄로스의 투수 총괄 코치로 발탁되었지만 팀 평균 자책점이 리그 최하위로 떨어졌다는 책임을 물어 8월 3일자로 육성 코치로 배치 전환이 되었고 같은 해에 오릭스를 퇴단했다.

2012년에는 일본 여자 프로 야구 기구 팀인 오사카 브레이비허니스의 감독으로 취임, 같은 해 리그에서 연간 우승을 이끌었지만 이듬해 2013년 1월 리그 전체의 팀 재편에 의해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상세 정보편집

출신 학교편집

  • 시마네 현립 오다 고등학교

선수 경력편집

사회인 시대
프로팀 경력

지도자·기타 경력편집

  • 마이니치 방송 야구 해설위원(1991년 ~ 1997년)
  • 한신 타이거스 1군 투수 코치(1998년 ~ 2000년)
  • 한신 타이거스 2군 투수 코치(2001년)
  • 오릭스 버펄로스 1군 투수 코치(2011년)
  • 오사카 브레이비허니스 감독(2012년)

수상·타이틀 경력편집

개인 기록편집

첫 기록편집

기타편집

  • 센트럴 리그 최다 등판 : 2회(1983년 ~ 1984년)[5]

등번호편집

  • 17(1979년 ~ 1981년 도중)
  • 12(1981년 도중 ~ 1990년)
  • 74(1998년 ~ 2001년)
  • 73(2011년)

등록명편집

  • 福間 納 (ふくま おさむ)(1979년 ~ 1990년, 1998년 ~ 1999년, 2011년 ~ )
  • 福間 納一 (ふくま おさむ)(2000년 ~ 2001년)

연도별 투수 성적편집






















































W
H
I
P
1979년 롯데 19 2 0 0 0 0 1 0 -- .000 159 37.0 44 8 13 0 0 15 0 0 19 17 4.14 1.54
1980년 8 1 0 0 0 0 0 0 -- ---- 53 12.0 14 3 6 0 1 3 1 0 7 7 5.25 1.67
1981년 한신 35 0 0 0 0 0 2 1 -- .000 125 30.2 29 2 8 0 0 24 2 0 11 8 2.35 1.21
1982년 63 0 0 0 0 1 2 1 -- .333 296 71.1 71 8 17 3 1 43 1 1 25 25 3.15 1.23
1983년 69 2 0 0 0 6 4 6 -- .600 546 130.2 125 10 36 9 2 89 2 1 42 38 2.62 1.23
1984년 77 0 0 0 0 4 2 1 -- .667 516 119.1 125 9 39 5 3 56 0 0 63 48 3.62 1.37
1985년 58 4 0 0 0 8 5 1 -- .615 453 104.1 114 14 37 7 2 60 0 0 50 47 4.05 1.45
1986년 6 3 0 0 0 1 2 0 -- .333 95 23.1 26 5 1 1 0 14 0 0 13 12 4.63 1.16
1987년 48 2 0 0 0 1 2 0 -- .333 307 71.1 82 4 16 3 2 32 1 0 43 38 4.79 1.37
1988년 42 0 0 0 0 0 0 0 -- ---- 134 32.1 33 2 11 0 0 17 0 0 12 12 3.34 1.36
1989년 9 0 0 0 0 1 0 0 -- 1.000 20 5.0 4 0 1 1 1 1 0 0 1 1 1.80 1.00
1990년 17 0 0 0 0 0 1 0 -- .000 52 9.2 15 2 8 0 0 6 0 0 15 11 10.24 2.38
통산 : 12년 451 14 0 0 0 22 21 9 -- .512 2756 647.0 682 67 193 29 12 360 7 2 301 264 3.67 1.35
  •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각주편집

  1. 당시엔 사회인 야구팀에 소속된 선수의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대학 졸업 후 2년’이라는 드래프트 지명 동결 기간은 없었고 이와 같이 고졸·사회인 1년 차의 선수라도 드래프트의 대상이 됐다.
  2. 당시 3순위에 지명된 선수는 오치아이 히로미쓰였다.
  3. ドラフト会議 過去のドラフト 第14回(1978年) - 닛칸 스포츠
  4. 같은 사례로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하라 다쓰노리에게 끝내기 홈런을 허용했지만 그 다음날의 경기에서도 요시다 감독은 후쿠마를 기용했다. 요시다 감독은 후쿠마에게 “승부를 해라”라고 지도하면서 하라를 우익수 플라이로 처리해 한신이 승리한 대표적인 예가 있다.
  5. 1984년 시즌 77경기 등판은 당시의 센트럴 리그 기록이다.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