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당 (신)
생애
편집영시 2년(기원전 15년), 아버지 희세의 뒤를 이어 주승휴후(周承休侯)에 봉해졌다.
수화 원년(기원전 8년)에 공으로 승격되고 사방 100리를 봉토로 받았으며, 원시 4년(4년)에 정공(鄭公)으로 옮겨졌다. 신나라 건국 후에는 장모공(章牟公) 또는 장평공(章平公)[1]으로 옮겨졌다. 아들 희상이 작위를 이었다.
출전
편집각주
편집- ↑ 은택후표에서는 장모공, 왕망전에서는 장평공이라고 한다.
선대 아버지 주승휴희후 희세 |
전한의 주승휴후 기원전 15년 ~ 기원전 8년 3월 |
후대 (공으로 승격) |
선대 (공에서 승격) |
전한의 주승휴공 기원전 8년 3월 ~ 기원후 4년 정월 |
후대 (22년 후, 후한) 아들 희상 |
선대 (첫 봉건) |
전한의 정공 4년 정월 ~ 9년 |
후대 (전한 멸망) |
선대 (첫 봉건) |
신의 장모공 (장평공) 9년 ~ 13년 |
후대 아들 희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