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항쟁
1·8 항쟁(一·八抗爭)은 1987년 9월 17일부터 1988년 1월 8일까지 대한민국 광주광역시의 조선대학교에서 일어난 대학개혁운동이자 학원민주화운동이다. 일각에서는 조선대 사태라고도 한다.[1]
1·8 항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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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hosun University Student Activism.jpg.jpg | |
별칭 | 조선대 사태 |
장소 |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조선대학교 |
날짜 | 1987년 - 1988년 |
사건 개요
편집호남 지역 민중들에 의해 설립된 민립대학인 조선대학교를 사유화(私有化)하고자 대학 설립 당시 '설립동지회 회장'이었던 박철웅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1982년 불법으로 정관을 변경하였고 부정입학, 교수 해임, 교수 및 학생들에 대한 폭언과 폭행, 공금 횡령을 하였다. 1986년에는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막기 위해 매일 아침 7시에 전체 교수 및 교직원을 운동장으로 집합시켜 출석을 부르고 노교수, 여교수 할 것 없이 운동장을 두 바퀴씩 구보하게 한 다음 총장에게 충성서약을 하게 하는 등[2] 사건이 있었다. 온갖 전횡을 일삼던[1] 박철웅 총장과 그 일가에 항거하였다.[3] 제5공화국 막바지인 1987년 반독재투쟁과 맞물려 전개된 '박철웅 총장 퇴진 및 민립대학 환원' 투쟁(학생, 교수, 동문들이 중심) 으로서 113일간의 장기농성[4] (학부모 또한 가세) 이 있었다. 1988년 1월 8일 새벽 4시 학내에 공권력 투입으로 막을 내렸다.[5][6][7][8]
항쟁 기간동안 투입된 경찰력이 1,500여명에 이르며 강제진압과정에서 2명이 중화상을 입었으며, 1명이 투신하였고 45명이 구속되었다.[9][10] 1.8 항쟁을 계기로 교육부가 박철웅 총장과 기존의 이사진을 전원 해임하였고[11][12] 2월에는 학생, 교수, 동문, 학부모가 동참하는 '대학자치운영협의회'가 출범했으며 4월 해직 교수 24명이 복직한 데 이어 9월 29일 이돈명 총장이 취임하면서[13] 학원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1·8 항쟁은 조선대 역사에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는 사건으로 민립대학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 대학민주화 운동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고[14] 2007년 1월 7일 학교 공식기념일로 제정되었으며[14] 2012년 24주년을 맞이하였다.[15]
각주
편집- ↑ 가 나 “옛 재단은 ‘조선대’ 들어간 조직명 사용 마라”. 경향신문. 2010년 11월 3일. 2011년 11월 26일에 확인함.
- ↑ 한홍구 (2001년 8월 22일).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 학교가 원래 니거였니?》. 한겨레21 (제373호).
- ↑ “朝鮮大生 1千5百명 총장집앞서 한때시위”. 동아일보. 1987년 9월 9일.
- ↑ “朝鮮大제적생 30여명 4일째 농성계속”. 경향신문. 1987년 9월 21일.
- ↑ “朝鮮大 學內사태 관련 公權力개입 요청”. 동아일보. 1987년 11월 11일.
- ↑ “朴哲雄 朝鮮大총장 해임”. 동아일보. 1987년 12월 29일.
- ↑ “조선대 일부 학생들은 朴哲雄총장 퇴진등을 요구하며 본관 총장실등을 점거”. 경향신문. 1988년 1월 8일.
- ↑ “朝鮮大농성 학생 강제해산”. 동아일보. 1988년 1월 8일.
- ↑ “4개월째 농성 朝鮮大生 警察투입 강제解散”. 경향신문. 1988년 1월 8일.
- ↑ “朝鮮大 농성학생 20명 拘束방침”. 동아일보. 1988년 1월 9일.
- ↑ “朝鮮大에 종합감사 官選이사 8명선임”. 경향신문. 1988년 2월 4일.
- ↑ “朝鮮大 새理事陳 구성”. 경향신문. 1988년 1월 27일.
- ↑ “李敦明 朝鮮大총장 本校운동장서 취임식”. 경향신문. 1988년 9월 29일.
- ↑ 가 나 송창헌 기자 (2007년 1월 7일). “조선대, 1.8항쟁 19년 만에 공식기념일 제정”. 뉴시스. 2015년 10월 2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11월 12일에 확인함.
- ↑ 장철호 기자 (2012년 1월 6일). “조선대 1.8항쟁 24주년 기념식 거행”. 프라임 경제. 2012년 5월 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1월 10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