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아시안 게임

제4회 아시안 게임아시아 경기 연맹 주관으로 1962년 8월 24일부터 9월 4일까지 16일 동안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렸다. 17개국이 참가하였으며, 참가 선수는 1,460명이다.


제4회 아시안 게임
Pesta Olahraga Asia 1962
대회 개요
개최 도시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참가국17개국
참가 선수1,460명
종목13종목
개회식1962년 8월 24일
폐회식1962년 9월 4일
공식 개회 선언수카르노 대통령
선수 선서페리 손빌
성화 점화에펜디 살레
주경기장겔로라 붕 카르노 스타디움
이전 대회 / 다음 대회
1958 도쿄1966 방콕

유치 신청 도시 편집

1958년 아시안 게임이 진행 중이던 1958년 5월 23일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 경기 연맹(AGF) 총회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파키스탄 카라치를 누르고 1962년 아시안 게임 개최 도시로 선정되었다.

1962년 아시안 게임 개최지 투표 결과
나라 도시 득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22
  파키스탄 카라치 20

참가국 편집

총 17개 회원국이 참가했다.[1] 사라왁이 처음으로 아시안 게임에 참가했다.

사회주의자였던 수카르노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던 인도네시아 정부는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수교 중이었고, 또한 중화민국(타이완)이 수카르노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중화민국 선수단의 입국을 거부하였다. 또한 이슬람권 국가인 인도네시아 정부는 아랍 세계 국가들의 압력으로 인해 이스라엘 선수단의 입국을 거부하였다. 한편 인도네시아 정부는 대한민국 선수단의 입국도 거부하려고 했지만 나중에 철회했다. 이를 계기로 인도네시아는 순수한 스포츠 경기를 정치 문제와 결부시키는 오점을 남겼다.

대회 종료 후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는 인도네시아를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에서 제명시키는 한편 인도네시아의 1964년 도쿄 하계 올림픽 참가를 금지했다. 인도네시아는 이에 반발하여 역시 IOC를 보이콧하던 중화인민공화국과 함께 이듬해인 1963년에 신흥국 경기 대회(GANEFO, 가네포) 대회를 창설하였다. 한편 국제 올림픽 위원회는 이 대회가 정치적으로 연관되어 있어 참가한 선수들이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도록 조치하였다.

종목 편집

배드민턴이 대회 종목으로 처음 채택되었다. 국제 역도 연맹(IWF)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정치적인 이유로 타이완, 이스라엘 선수단의 입국을 거부한 책임을 물어 아시안 게임에서 역도 종목의 승인을 취소하였다.

대한민국, 말라야 연방, 싱가포르, 이란, 인도, 일본, 파키스탄, 필리핀, 홍콩의 9개국은 역도 종목에서 불참하는 보이콧을 단행하여 역도 참가국은 주최국인 인도네시아만 남게 되었다. 결국 역도 경기는 아시안 게임에서 취소되고 말았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국제 육상 경기 연맹(IAAF), 국제 역도 연맹(IWF) 등은 이 대회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여 참가 선수와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인도네시아는 대회를 강행하였다.

메달 집계 편집

1962년 아시안 게임 메달 집계  
순위 국가               합계
1   일본 73 55 24 152
2   인도네시아 11 12 28 51
3   인도 10 13 11 34
4   파키스탄 8 11 8 27
5   필리핀 7 6 25 38
6   대한민국 4 8 11 23
7   태국 2 5 5 12
8   말라야 연방 2 3 5 10
9   버마 2 1 7 10
10   싱가포르 1 0 1 2
11   실론 0 1 2 3
12   홍콩 0 0 1 1
합계 120 122 130 372

각주 편집

  1. “Japan top the list with 73 golds”. The Straits Times. 1962년 9월 5일. 2012년 7월 13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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