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쿠샤인(일본어: シャクシャイン, 沙牟奢允, 아이누어: saksaynu, Samkusaynu 사쿠사이누, 사무쿠사이누, 1606년? ~ 1669년 10월 23일)은 일본 에도 시대 홋카이도 히다카국의 히다카 아이누인의 수장이었다. 샤쿠사인 전쟁을 일으켜 에도 막부와 일본인에 반기를 들었다. 신히다카 정으로 흡수된 시즈우치 정 (시베차리)에서 가모쿠타인을 수장으로 모시는 부족의 부수장으로서, 오니비시가 이끄는 하에의 아이누와 어업, 수렵권을 둘러싸고 대립하였다.[1] 시베차리 부족은 아이누어로 동쪽 사람들을 뜻하는 "메나시클", 하에 부족은 서쪽 부족을 뜻하는 "슘클"이라는 대집단의 일부였다.[1] 한편으로 무쓰국 마쓰마에번에서는 번으로부터 거리가 멀어 통제를 잘 듣지 않는 메나시클을 위협적인 존재로 여겼다.[1]

1648년, 샤쿠샤인이 오니비시의 부하를 살해한 것을 계기로 두 부족 간의 대립은 격화되어, 1653년 하에의 부족원이 가모쿠타인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1] 그 후 샤쿠샤인은 시베차리 부족의 족장이 되어, 오니비시와 마쓰마에성에서 마쓰마에 번의 중재 하에 화해할 것을 서약하였지만[2] 두 부족 사이의 대립은 계속되어 결국 샤쿠사인이 오니비시를 살해하게 되었다. 그러자 하에 부족은 마쓰마에 번에 두 차례 무기를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가, 두 번째 사절이었던 오니비시의 자형(姉兄) 우타후가 천연두로 급사한 것이 아이누인 사이에서 마쓰마에 번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샤쿠샤인은 다른 아이누인 부족들을 설득하여 1669년 시라누카 군에서 마시케 군에 이르는 일대에서 아이누인의 봉기가 이루어졌다.[2]

이 봉기로 273명의 일본인이 살해당하자, 같은 해 9월 에도 막부마쓰마에 야스히로를 지휘관으로 파견하여 마쓰마에 번의 군사들 지휘하도록 하였고[2], 번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부족들을 통해 아이누인들을 이간하는 작전을 사용하였다.[2] 10월 23일, 샤쿠샤인은 사토 곤우에몬의 화해 계략에 휘말려 살해당하고, 시베차리의 요새도 함락되고 말았다. 결국 각지의 아이누 부족들도 차례차례 막부에 굴복하였다.[2]

참고 서적 편집

  • 고미 후미히코 씀, 한은미 옮김, 《2천년 일본사를 만든 일본인 이야기》 (2003년), 이손사, ISBN 89-87095-48-7

각주 편집

  1. 고미, 248쪽
  2. 고미, 249쪽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