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조씨
양주 조씨(楊州趙氏)는 경기도 양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나라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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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 경기도 양주시 |
시조 | 조잠(趙岑) |
집성촌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묵안리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관상리 |
주요 인물 | 조계생, 조말생, 조극관, 조수량, 조정, 장렬왕후, 조존성, 조창원, 조사석, 조태구, 조태채, 조도빈, 조태억, 조두순, 조병세, 조병식, 조병갑, 조민희, 조영희, 조동희, 조강희, 조명희, 조세희, 조중응, 조중수, 조중헌, 조중훈, 조중표, 조양호, 조남호, 조정호, 조환익, 조원태, 조정식, 조원희 |
인구(2015년) | 29,631명 |
역사 편집
양주 조씨(楊州趙氏)의 시조 조잠(趙岑)은 고려 때 양주호장(楊州戶長)을 역임하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추증되었다.
조잠(趙岑)의 증손인 조계생(趙啓生)과 조말생(趙末生)이 문과에 급제하여 조선 세종 때 좌참찬(左參贊)과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에 이르렀다.[1]
양주 조씨는 문과 급제자 90명을 배출하여 인구(2015년 29,631명) 대비 문과 급제자 비율이 높다.[2] 정승 8명과 홍문관 대제학이 3명을 배출하였다.
인물 편집
- 조계생(趙啓生, 1363년 ~ 1438년) : 4세손. 1388년(고려 우왕 14년)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세종 때 좌참찬(左參贊)에 이르렀다. 시호는 정평(靖平)이다.
- 조말생(趙末生, 1370년 ~ 1447년) : 조계생의 동생. 1401년(태종 1년)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하여 1446년 영중추원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강(文剛)이다.
- 조극관(趙克寬) : 조계생의 아들. 1414년(태종 14) 알성문과에 급제하고 1453년 이조판서가 되었지만, 계유정난 때 김종서(金宗瑞)의 일파로 몰려 피살되었다.
- 조정(趙挺, 1551년 ~ 1629년) : 10세손. 1583년 문과에 급제하여 광해군 때 우의정을 역임하였고, 형난공신(亨難功臣) 2등에 책록되었으며, 한천군(漢川君)에 봉해졌다.
- 조존성(趙存性, 1554년 ~ 1628년) : 성종(成宗)의 부마인 조무강(趙無疆)의 증손. 1590년(선조 23)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소민(昭敏)이다.
- 조창원(趙昌遠, 1583년 ~ 1646년) : 조존성의 아들. 딸이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莊烈王后)로 간택되자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한원부원군(漢原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영돈녕부사에 배수되었다. 시호는 혜목(惠穆)이다.
- 조두순(趙斗淳, 1796년 ~ 1870년) : 1827년 문과에 급제하고, 1866년(고종 3) 영의정으로 치사하였다.
- 조병갑
- 조병세
- 조강희
- 조명희
- 조중훈 : 한진그룹 회장
- 조기숙
- 조원희
조선 왕실과의 인척관계 편집
항렬자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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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편집
- 2000년 23,942명
- 2015년 29,63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