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진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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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진(姜景鎭, 1893년 5월 4일 ~ 1940년 12월 8일)은 대한민국독립운동가이다.

강경진
姜景鎭
신상정보
출생1893년 5월 4일(1893-05-04)
조선 전라도 남원
사망1940년 12월 8일(1940-12-08) (향년 47세)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거주지대한제국 전라북도 남원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일제 강점기 경성부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국적대한민국
본관진주(晋州)
직업독립운동가
학력전라북도 전주보통학교
종교유교(성리학)
배우자해주 최씨 부인
자녀슬하 3남 1녀
활동 정보
관련 활동독립운동
경력신간회 초급행정위원
한국독립당 초급행정위원
상훈1982년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장 추서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본관진주(晋州)이고 호(號)는 산남(山南)이다.

생애 편집

일생 편집

그는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직후 같은 해 1919년 7월 대동단(大同團)에 가입한 후 김재구(金在九)·한태현(韓泰鉉) 등과 전라북도 남원 지방을 중심으로 대동단 조직 확대에 힘을 쏟는 한편 경성의 대동단 중앙본부로부터 교부를 받은 각종 선전물을 배포하면서 대한 독립 의식을 고취하였으며,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동단 중앙본부에 제공하는 등 대한 독립 운동에 앞장을 섰다.

대동단은 1919년 3월 말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대한 조선 전국 민족의 대동단결을 표방하고 경성부에서 결성한 독립 운동 단체인데, 본부를 경성부에 두고 전국 각처에 지단을 설치하였다. 또 동단에서는 당시 사회 각층을 황족(皇族)·진신(縉紳)·유림(儒林)·종교(宗敎)·교육(敎育)·상공(商工)·노동(勞動)·청년(靑年)·군인(軍人)·부인(婦人)·지역구역(地域區域) 등 11개 단(團)으로 분류하고, 이들 각층의 인사들을 통일·종합함으로써 범국민적 조직을 구상했다. 강경진 등이 활약한 대동단 전라북도 남원 지단에서는 주로 청년단원을 근간으로 조직 활동을 벌였다. 또 이들은 자금을 수합하여 경성의 대동단 중앙본부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1919년 11월 대동단 중앙본부가 주도한 의친왕 이강(義親王 李堈) 前 대한제국 대리청정의 중화민국 장쑤 성 상하이(上海) 망명 관련 계획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대동단 조직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동단의 전라북도 지단도 자연 발각되었고, 이로 인하여 그는 1920년 3월 15일 전라남도 광주지방법원 전라북도 군산지원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른 후 1921년 3월 15일 만기출감하였다.

이후 1927년 신간회 창립 대회에 초급행정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이후 1928년에서 1935년까자 한국독립당 자치행정연대위원을 지냈다.

사후 편집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고자 1982년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장을,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하였다.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