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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客主)는 옛날부터 한국에 있었던 주요한 상업·금융기관의 하나이다. 이들은 포구에서 활동하던 상인이며, 객주나 여각은 각 지방의 선상(船商)이 물화를 싣고 포구에 들어오면 그 상품의 매매를 중개하고, 부수적으로 운송, 보관, 숙박, 금융 등의 영업도 하였다. 객주와 여각은 지방의 큰 장시에도 있었다.

목차

연원편집

객주의 기원이나 연혁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고려 때부터 있은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객주란 객상주인(客商主人)이라는 뜻이며, 주인이란 주선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운영편집

상품의 생산자나 상인들이 보낸 화물을 받아들이고, 혹은 지방에서 화물을 가지고 온 상인들을 실비(實費)로 재우기도 하였으며, 한편 그 위탁에 응하여 화물의 매매를 주선해 주고 구전(口錢)을 받았다. 그런데 반드시 일정한 구전을 받는 것이 아니고 경우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보통은 대가(代價)의 100분의 1 내지 5정도였다. 객주는 화물의 보관도 받았으나 특별히 창고세를 받지는 않았다. 다만 아주 오래 팔리지 않거나, 팔리기 전에 화주(貨主)가 자기 화물을 다른 곳으로 옮길 경우에는 창고세를 받는 일이 있었다.

객주는 또한 화물을 가진 사람이나 살 사람에 대해서 대금(代金)의 입체(立替)·자금의 융통을 해주어 그 화물을 담보로서 잡아 둘 수가 있으며, 특수한 경우에는 토지·가옥 등 부동산(不動産)으로써 이에 충당시키는 일도 가끔 있었으나 대부분은 신용대부(信用貸付)를 행하였다. 그리고 화물의 거래·대금입체(代金立替)·자금제공 등을 할 경우 흔히 수표(手票) 비슷한 어음(於音)을 발행하거나 인수(引受)하고, 또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간의 금전(金錢)·재화(財貨)의 결제(決濟)를 대행하거나, 오늘날의 환(換) 비슷한 환표(換票)를 발행·인수하여 교통이 불편하던 당시에 여객이나 상인들에게 많은 편의를 주었다.

또 객주는 하주(荷主)의 자금, 혹은 왕실·대관(大官)·양반 등을 위하여 예금(預金)도 취급하였다. 이럴 경우 일반적으로 하주나 상인에 대해서는 1푼(分) 내지 2푼의 이자를 지불하는 반면 왕실이나 양반 등에 대해서는 대개 이자가 없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은 뒤로는 한 달에 2푼의 이자를 붙이게 되었다. 또 객주는 지방에서 중앙의 각 관청에 바치는 물품·금전 등도 취급하였는데, 정부의 두터운 보호를 받기도 하였다.

개항기의 객주편집

관리들의 엽관(獵官) 운동의 자금을 대주어 일이 잘되면 특정한 화물을 독점적으로 취급하는 특권을 얻는 수도 있었다. 봉건적인 경제 체제이긴 하였으나 그 업무를 통하여 자본을 축적할 수 있어서, 개항(開港)과 동시에 초기 외국 무역의 담당자가 되어 새로운 자본 계급을 형성하게 되었다.

1876년(고종 13) 강화도 조약 체결 후 외국 상품이 개항지(開港地)를 조직하여 길드(Guild)적인 동업 조합(同業組合)의 기능을 발휘하였으며, 이들은 개항지에서 외국인과 절충하여 외국 상품 판매의 중개 역할도 하여 꽤나 수익을 많이 보곤 하였다. 그러나 1882년에 조청상민수륙장정을 통해 객주는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기도 했다. 1890년(고종 27) 인천·부산항에 객주 25개소를 설치하여 화물(貨物)을 취급하는 도매업과 운송업·창고업 등 운영하는 상회사를 설립하여 맡아보면서 구전(口錢)을 받도록 하였다. 1930년에 철폐되었다.

함께 보기편집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상업자본의 발달〉" 항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