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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찬겸(桂燦謙, 1890년 7월 6일 ~ ?)은 일제 강점기의 교사 출신 관료이다.

생애편집

평안북도 정주군의 교육자 집안 출신이다. 한성부로 유학하여 관립한성사범학교1911년에 졸업하였고, 곧바로 평안북도의 창성공립보통학교 훈도로 임명되면서 이 지역에서 교육자로 근무했다.

1920년조선총독부 평안북도 시학(視學)으로 뽑혀서 교육행정을 담당하는 관료로 전업했다. 이때부터 2년 동안 평북의 교육행정을 맡았고, 그 사이 소학교 및 보통학교 교원임시시험위원으로도 활동했다.

1924년에는 조선총독부 군수에 임명되어 평북 녕변군에 발령을 받았다. 녕변군수로 재직 중이던 1928년에 다이쇼대례기념장을 받은 바 있다. 이후 초산군박천군 군수를 차례로 역임했다. 1932년에 훈6등 서보장을 받고 고등관 5등으로 승진했다. 1932년을 기준으로 종6위에 서위되어 있었다.

1935년 조선총독부가 총독부의 조선 통치를 도운 공로자 353명을 뽑아 펴낸 《조선공로자명감》에도 실려 있다.[1][2] 당시 직책은 군수로 되어 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1. 성강현 (2004년 3월 18일). “‘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일요시사. 2008년 6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3월 6일에 확인함. 
  2. 성강현 (2004년 3월 18일). “3백53명 중 2백56명 명단”. 일요시사. 2008년 6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3월 6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