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보육원(保育院)은 사적인 양육자가 부재한 미성년자에게 공적인 양육자가 되어주는 기관이다. 아동은 성인이 될 때까지 보육원에서 성장한다. 아동들 중에는 입양 절차를 통해 사적인 양육자를 갖게 되기도 한다.[1][2][3][4][5] 정부가 육아의 주체가 되는 '공공 육아'가 세계적 추세가 되는 상황에서 24시간 운영하는 어린이집과 개념상 다르지 않다.[6] 또 기숙사와도 개념이 통한다.[7]
역사
편집보육원은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있었고 중세에는 교회·사원·길드·자선단체 등에서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현대적 의미의 최초의 보육원은 1698년 A.H.프랑케가 할레에 설립한 것으로 독일 각지에 보육원의 개설을 촉진시켰다. 18세기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가 실시한 고아 교육 사업은 전 유럽의 주목을 끌었다.
각 국가의 상황
편집한국
편집고려시대에 고아를 사원에 집단적으로 수용하여 보호하던 예가 있고, 조선시대의 현종·숙종·영조·정조 때에는 국가적으로 고아 사업을 실시하였다. 현대적 의미의 보육원은 1888년 프랑스 교회가 명동에 설치·운영한 천주교 보육원을 들 수 있다.
대한민국의 아동복지법에 의하면 0세부터 5세 미만의 아이를 수용하는 시설은 '영아원'이고, 5세부터 18세까지의 아이를 수용하는 시설은 '육아원'이다. 개정된 법에 의해 2014년 현재 모든 보육원이 0세부터 18세까지의 아동을 보호한다.
보육원은 아동복지법에 따른 아동복지시설 중 아동양육시설에 해당되며, 유사한 아동복지시설로 아동보호치료시설, 일시보호시설, 공동생활가정 등이 있다.[8]
최초의 현대적인 보육원은 구한말인 1885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서울 정동에 설립한 언더우드학당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천주교에서는 1888년 한양 명동에 있는 명동성당에서 천주교 고아원을 통해 아이들을 수용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고아원이 대거 설치된 적이 있었고, 해방 이후에는 미국인 전문가와 선교사들의 도움과 위탁으로 고아사업이 발전되었고 6.25 전쟁으로 전쟁 고아가 증가하면서 고아원 증축사업이 진행되었다.
영아원
편집보육원을 소재로 한 작품
편집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보육원
- ↑ 강기헌·장주영·이유정·정종문·장혁진. 스티브 잡스처럼 … 미·영 등 선진국선 입양·가정 위탁. 중앙일보. 2014년 4월 9일.
- ↑ 김광덕. (한국 시사토크) "현수처럼 고통 겪는 아동 많아… 해외 입양 결국은 사라져야". 한국일보. 2014년 3월 26일.
- ↑ 송옥진. "아이·엄마에게 평생 상처 해외 입양, 마지막 선택 돼야". 한국일보. 2014년 7월 18일.
- ↑ 박재천. 성남시청소년재단 '몰래 산타 대작전' 펼쳐. 아주경제. 2014년 12월 24일.
- ↑ 이숙종. 천안시, 보육취약계층 대상 24시간 어린이집 운영. 뉴스1. 2016년 12월 4일.
- ↑ 김경은·이승훈. 기숙사 생활의 두 얼굴… 제주 국제학교의 경우.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년 3월 13일. 기사수정 2017년 3월 16일.
- ↑ 법제처. “아동복지법”. 《국가법령정보센터》. 2017년 11월 28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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