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동산동 비석군

고양 동산동 비석군경기도 고양시 동산동에 있는 비석군이다. 2006년 11월 1일 고양시의 향토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었다.

동산동비석군
대한민국 고양시향토문화재
종목향토문화재 제47호
(2006년 11월 1일 지정)
위치
고양 동산동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고양 동산동
고양 동산동
고양 동산동(대한민국)
주소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동산동 밥할머니공원 내
좌표북위 37° 38′ 44″ 동경 126° 53′ 18″ / 북위 37.64556° 동경 126.88833°  / 37.64556; 126.88833

개요 편집

고양밥할머니석상이 있는 동산동 창릉 모퉁이 공원에 있다. 북쪽에서부터 차례로 吳挺日淸德恤民善政碑와 德水慈氏橋碑銘, 嚴纘善政碑가 있다. 덕수자씨교비명은 조선 현종(1660)때 덕수교 다리를 만들면서 이 비를 세우게 된 배경, 공사기간, 사용경비, 그리고 도움을 준 사람 1000여 명의 인명을 이두 문자로 기록한 것이며, 吳挺日淸德恤民善政碑는 당시 관찰사였던 오정일의 공덕비이다. 그리고 엄찬은 숙종 16년(1690)부터 숙종 17년(1691)까지 고양군수를 지냈던 인물이다.

현지 안내문 편집

이 동산동 비석군은 고양 밥 할머니 석상화 함께 삼송택지개발지구내 밥 할머니 공원안에 위치해 있다. 비석군은 오른쪽으로부터 규모가 큰 오정일 선정비, 덕수 자씨 교비명, 엄찬 선정비 순으로 세워져 있다. 이 비석들은 350년 전 고양지역의 인물과 역사적 상황, 주요 유적, 도로의 현황 등을 알 수 있고, 특히 한문과 함께 이두 표기의 기록이 많아 고양지역의 향토사 연구 및 국문학적으로도 그 가치가 인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방백 오후정일 청덕 휼민 선정비(方伯 吳候挺一 淸德 恤民 善政碑)

총 높이가 3m에 이르는 큰 비석으로 아랫부분의 귀부(龜趺)와 중간의 비신(碑身), 윗 부분의 이수(螭首)로 나뉘어져 있다.

이 비석은 1660년 고양군 덕수천(현재의 창릉천)에 새롭게 석교(돌다리)를 만들면서 당시 경기도 관찰사인 오정일(吳挺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앞면과 뒷면에 비문이 잘 남아 있어 건립 연도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오정일(1610~1670)은 조선조의 문신으로 본관은 동복(同福)이며 호는 귀사(龜砂)이다. 1639년 문과에 급제한 뒤 황해도 및 경기도 관찰사를 비롯하여 도승지를 거쳐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고양 덕수 자씨 교비명(高陽 德水 慈氏 僑碑銘)

총 높이 3.4m의 비석으로 직사각형의 비좌에 비신과 옥개(屋蓋)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비문은 앞쪽 윗부분에 제목 글씨인 두전(頭篆)이 있고 그 아래로 비문이 세로로 새겨져 있다. 비석은 1660년(현종1)에 조선남(趙善南)과 고양지역의 주민들이 서로 힘을 모아 덕수천(현 창릉천)에 돌다리를 만들고 그 내력을 상세히 적은 것이다. 비문에 의하면 석교를 만들어 홍수에 대비하고 임금과 백성들을 편안히 다닐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축조 목적을 알 수 있다. 비의 앞·뒷면에는 약 800명의 사람 이름이 한문과 이두문자(吏讀文字) 등으로 적혀 있어 학술적·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고양군수 엄찬 선정비(高陽郡守 嚴纘 善政碑)

끝에 있는 작은 비석으로 총 높이는 약 1.6m이다.

엄찬은 1690년 12월 22일(숙종 16년)부터 1691년 11월 2일(숙종 17년)까지 고양군수를 지낸 인물이다. 이 비석은 당시 군수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화강석 비문이며 엄찬 군수는 충주목사로 자리를 옮겼다.[1]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현지 안내문 인용

참고 문헌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