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언랑(顧彦朗, ? ~ 891년)은 중국 당나라 말기에 활약했던 군벌로, 887년부터 891년 사망할 때까지 절도사의 신분으로써 검남동천(劍南東川, 본부는 지금의 사천성 면양시에 있었다) 번진(藩鎭)을 지배하였다.

고언랑
顧彦朗
당나라의 검남동천 절도사

신상정보
출생일 미상
출생지 풍주(豊州, 지금의 내몽골 자치구 바얀누르시)
사망일 891년
사망지 재주(梓州, 지금의 사천성 면양시)
경력 천덕군(天德軍) 소교(小校)
우위(右衛)대장군
검남동천(劍南東川) 절도사(887년 ~ 891년)
형제자매 동생 고언휘
자녀 아들 고재순(顧在珣)
직업 당나라 군벌, 검남동천(劍南東川) 절도사

생애 편집

배경 편집

고언랑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신당서》에 실려 있는 그의 열전에 의하면, 그는 풍주(豊州, 지금의 내몽골 자치구 바얀누르시) 출신이었다고 한다. 그와 동생 고언휘는 모두 천덕군(天德軍, 지금의 내몽골 자치구 바얀누르시 우라터 중기에 있던 기지부대)의 소교(小校, 하급 장교)로 있었다. 천덕군사(天德軍使) 채경(蔡京)은 이들 형제가 장차 높은 벼슬길에 오를 것이라 여기고, 아들을 시켜 그들에게 많은 돈을 주게 하였다. 뒤이어, 황소가 이끄는 대규모 농민 반란 와중에 고씨 형제는 대(對)황소 작전에 참여하여 당나라의 도성 장안을 탈환하는 데 협조하였다. 이후 고언랑은 우위대장군(右衛大將軍)에 임명되었다.[1]

절도사로서 편집

887년, 당희종은 고언랑을 검남동천 절도사에 임명하였다. 그가 부임하는 길에 검문(劍門, 지금의 사천성 광원시)을 지날 때, 인근 번진의 검남서천(劍南西川, 본부는 지금의 사천성 성도시에 있었다) 진경선의 부하들이 그의 부절을 빼앗아, 그가 검남동천 번진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이주(利州, 지금의 광위안 시 소재)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조정에서 파견된 사자의 조정이 있고 나서야, 진경선은 고언랑이 검남동천 번진으로 부임하는 것을 허가했다. 고언랑은 임지에 도착한 후, 동생 고언휘를 한주(漢州, 지금의 사천성 덕양시)자사에 임명하였다.[1]

이와 동시에, 고언랑의 이전 신책군(神策軍) 시절 동료였던 왕건이 낭주(閬州, 지금의 사천성 남충시)를 점령하고 자사를 자칭하여 군대를 파견해 인근 지역들을 습격하였다. 고언랑은 왕건에게 습격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사자를 보내 그들의 그 당시의 우정을 내세워, 왕건에게 군량을 제공하겠다는 것을 여러 차례 제의하였다. 왕건은 끝내 검남동천 번진을 습격하지 않았다.[2]

출전 및 참고 자료 편집

  1. 신당서》, 권186.
  2. 자치통감》, 권256.
전임
고인후
검남동천 절도사
887년 ~ 891년
후임
고언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