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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열(高烈, 미상~1056년 4월 20일(윤3월 3일[1]))은 여진 출신의 고려무신이다.

생애편집

본래 흑수여진(黑水女眞)[2] 출신이다.[3]

1041년(정종 7년)에 중대광(重大匡)으로 승진했다.[4]

1044년(정종 10년)에 섭병부상서(攝兵部尙書)로 있었으며, 변방 성곽 축조에 공을 세워 포상을 받았다.[5]

1047년(문종 원년)에 수사공(守司空)·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로 임명되었다.[6]

1056년(문종 10년)에 수사공(守司空)·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로 은퇴했으며, 같은 해 윤3월 3일(양력 4월 20일)에 사망했다. 사망했을 때 왕은 사흘 동안 조회를 중지했고 모든 관리들에게 장례에 참석하게 했다.[1]

평가편집

활을 잘 쏘았으며,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워 당대의 이름난 장수가 되었다.[1]

참고 자료편집

  • 《고려사》
  • 《고려사절요》

각주편집

  1. 《고려사》 권7, 세가7, 문종 10년(1056) 윤3월 3일(을유)
  2. 생여진·동여진이라고도 한다. 만주의 흑룡강 유역을 근거지로 하면서 우리나라의 두만강 유역을 왕래하며 사는 여진을 말한다.
  3. 《고려사절요》 권4, 문종 10년(1056) 윤3월
  4. 《고려사》 권6, 세가6, 정종 7년(1041) 11월 1일(병오)
  5. 《고려사》 권6, 세가6, 정종 10년(1044) 11월 18일(을해)
  6. 《고려사》 권7, 세가7, 문종 원년(1047) 4월 21일(을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