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자이 양민 학살 사건

고자이 양민학살 사건1966년 2월 26일 베트남 빈딘성 떠이선현 고자이 마을 주민들이 대량학살 당하여 380명이 죽은 사건이다. 한국군 맹호 부대가 학살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도 있다.[2][3]

고자이 양민 학살 사건
LocationVietnamBinhDinh.png
발생일1966년 2월 26일
종류학살
사망자380명[1]
피해자베트남 양민
공격자미상

개요편집

1966년 2월 26일, 베트남 남부 빈딘성 떠이선현 타이빈 마을 안빈 취락을 방문한 한국 육군 소속의 맹호 부대(현 수도기계화보병사단)가 주민 380명을 모아 놓고 한 시간만에 한 사람도 남김없이 학살했다는 주장이다.[4][5] 맹호 부대는 고자이 양민 학살 사건과 병행하여 빈안 마을 부근 타이빈 마을에서 1,200명을 학살하는 타이빈 양민 학살 사건도 벌였다고 주장하고 있다.[6]

반박편집

고자이 마을에서 일어난 학살사건의 원인이 맹호부대가 아닌 다른 군대에 의한 학살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우선 마을의 벽화에 학살자로 묘사된 군인은 오른팔에 견장을 붙인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당대의 베트남 공화국 군대의 특성이며, 한국군은 왼팔에 부대 견장을 붙인다. 이밖에도 벽화에 묘사된 군인의 모습이 외견상 베트남인과 유사하며 한국인으로 단정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7]

또한 가해자 측의 증언을 살펴보지 않는 등 교차검증이 부실하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맹호 부대에 의한 학살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가해자로 여겨지는 당시의 맹호 부대의 지휘관이나 관계자들을 만나서 학살 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7]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Ku Su Jeong (2011년 2월 24일). “Words of Condemnation and Drinks of Reconciliation”. 한겨레21. 2015년 3얼 19일에 확인함. 
  2. 한겨레신문 기사문1
  3. Bình An massacre : Vụ thảm sát Bình An
  4. “총 쏘고 칼로 찌르고 독약 먹이고 1시간 만에 380명 살육한 한국군”. 《오마이뉴스》. 2007년 5월 22일. 2011년 2월 25일에 확인함. 
  5. “1966년 베트남 고자이 마을의 비극”. 《오마이뉴스》. 2007년 4월 7일. 2011년 2월 25일에 확인함. 
  6. 역사는 살아있다, 제8장 조선 전쟁과 베트남 전쟁(下), 동아일보, 2009년 9월 25일자, 2020년 2월 26일 확인
  7. 근거없는 '학살자 매도'는 안 된다, 오마이뉴스 배상렬 기자, 2007년 6월 8일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