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철학)

고통의 철학신학, 철학, 문학 등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아픔 혹은 고통 (모두 pain)을 취급한다.

아픔에 대해서는 (의사 등 뿐만이 아니라) 철학자신학자 등도 자주 논해 왔다. 근래에는 인간의 경험 (이나 현상)이라는 것이 가지는 기본적인 성질에 관해서 철학적인 논의를 실시할 때나, 감각질에 대해 논할 때 등에 자주 언급되고 있다. 고통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하고 인간의 정체성을 알도록 도와주는 인생의 선생이 될 수도 있다.

고통과 종교편집

  • 기독교는 고통을 하나님의 성도가 성숙해 지는데 필수적인 훈련의 도구로 본다.
  • 불교에서는 존재는 고통이며 해탈을 통해서 극복된다고 한다.
  • 쾌락주의자들은 고통을 불행으로 본다.

기독교와 고통편집

1.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신학자인 스콧 펙(Margan Scott Peck)은 베스트셀러인 그의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이렇게 말한다.[1]

삶은 고통의 바다, 즉 고해苦海다. 이것은 삶의 진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진리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삶은 더 이상 고해가 아니다. 다시 말해,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이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될 때, 삶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비로소 삶의 문제에 대해 그 해답을 스스로 내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어렵다는 이 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 삶이란 대수롭지 않으며 쉬운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문제와 어려움이 가혹하다고 불평을 하게 된다.

그는 정당한 고통을 감수하라고 한다. 사람들이 정당한 고통을 피하려고 하면 실제로는 더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고 주장한다.

삶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삶은 더 이상 힘들지 않다. 또한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삶이 힘든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워서다. 하지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에 삶의 의미가 있다. 정신적/영적으로 성장하는 길은 오로지 문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문제란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부딪쳐서 해결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영혼의 성장과 발전에 영원히 장애가 된다.“그것은 내 문제가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대신해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가 우리 행동에 책임지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 행동의 결과로 따라오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서다. 삶이란 온통 개인적 선택과 결정의 연속임을 알아야 한다. 완전히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자유로워진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각자는 영원히 희생자로 남을 뿐이다.[2]

스콧 펙이 보는 남에게 고통을 주는 악한 사람들의 특징들편집

자신이 악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 죄책감을 피하고 완벽한 자아상을 유지하려는 의도로 지속적으로 자기기만적이다.
  • 자기기만의 결과로 남을 속인다.
  • 자신의 악과 죄를 매우 특정한 표적( 희생양 )에 투사한다.(Peck, 1983/1988, p 105 )).
  •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만큼 자기기만을 목적으로 흔히 사랑을 가장하여 미워한다.
  • 남용 정치 (감정) 전원 ( "명백한 또는 은밀한 강제로 다른 사람에 따라 자신의 의지의 부과를"(펙, 1,992분의 1,978, P298 ))
  • 높은 수준의 존경을 유지하고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
  • 자신의 죄에 일관성이 있다. 악한 사람들은 그들의 죄의 크기가 아니라 그들의 일관성(파괴의 정도)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함 (희생양 )
  • 비판과 다른 형태의 자기애적 상처에 대해 은밀한 편협함을 가지고 있다.


2. 팀 켈러 그는 인간사에 피할수 없는 것이 고통이라고 한다.하나의 수수께끼이며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해결을 받을수 있다고 한다. 고난까지도 다스리시는 만물의 주권자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생 풀무불에 뛰어들어 몸소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라고 도전한다. 그분의 고통당하심으로, 우리도 그분과 함께 통과할 수 있다고 제언한다.[3]

고난이 개인적인 성장과 훈련에 변화를 불러오지만 그렇다고 시련을 자신을 계발하는 방법쯤으로 인식해선 안 된다. 그런 시각은 고통을 즐기는 일종의 마조히즘(masochism)과 다르지 않다. 심신이 괴로워야 비로소 고결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굳이 그런 관점을 갖지 않아도 고난에는 스스로에게 몰두하게 만드는 성향이 있다. 자신과 자신의 성장에 집착하면 역경은 정말로 우리 목을 조르는 올무가 된다. 고난은 하나님을 이전보다 더 알아 가는 길, 주님을 더 섬기고 닮아 가는 길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의 역사적 개관편집

18세기19세기제러미 벤담마르키 드 사드는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벤담은 아픔·고통과 기분 좋음·쾌락 (pain and pleasure)을 객관적인 현상으로 간주해, 그 원리에 근거해 공리주의을 정의했다. 그러나, 마르키 드 사드는 완전히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아픔·고통은 그 자체로 윤리성을 가진다고 해, 아픔의 추구와 강요는 유용하며 기분 좋다고도 말할 수 있고, 그것은 실로 국가의 목적, 즉 보복적으로 고통을 주고 싶다는 욕구를 채우는 것, 예를 들면 을 이용하고 그것을 실시하니까 (그의 시대에는, 실제, 형벌은 고통을 분배하는 것이었다), 라고 보았던 것이다. 19세기 유럽에서는 벤담의 견해가 보급해, 새디즘의 (아픔으로 가득 찬) 견해가 너무나 강하게 억제되었으므로, 사드가 예견한 것처럼, 19세기의 견해는 탐닉하는 쾌락 그 자체가 되었다. 빅토리아 시대는 자주 이러한 위선의 예로서 들 수 있다.

여러가지 20세기의 철학자 (예를 들면 J. J. C. 스마트, 데이비드 루이스, 데이비드 암스트롱)는 아픔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말해, 또, 아픔에 의해 아는 인간의 경험의 성질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말했다. 또, 아픔은 여러가지 사회 철학적 논구의 주제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미셸 푸코는 아픔의 생물 의학적 모델과 고통을 일으키는 형벌의 회피라는 것은, 인류라는 것이 대체로 안기 십상인 계몽사상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보았다.

고통의 개체성편집

'사람은 마음의 《내적 세계》에 주하는 것에 의해서, 자기 자신의 의식에 대한 내재적인 인식을 가진다' 등이라는 것이, 자주 어 피리어리 원리로서 받아 들여지고 있다.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를 결정적으로 다르다고 보는 이러한 견해라는 것은 르네 데카르트가 데카르트적 이원론의 원리를 정한 것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퍼졌다. (데카르트와 같이) 자신의 의식을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면, 《다른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로서 솟구쳐 온다. 그리고 이 《다른 사람의 마음》문제에 대한 논의는 자주《고통》을 축으로 전개했던 것이다.

고통과 그 의미의 해석자들편집

1. 윌리엄 셔익스피어 그의 4대 비극의 작품들 '햄릿', '리어왕', '오셀로', '맥베스'은 인간의 고통에 대한 원숙하고도 냉혹한 통찰이며 인간 비극의 원인을 설명한다.

햄릿- 이 책에서 To be, or not to be가 ‘있음이냐 없음이냐’로 번역된 것은 이 비극이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복수라는 행위가 인간의 존재와 도덕성에 미치는 영향 및 그 행위의 본질을 추구하는 극이라는 해석을 보여준다.
『오셀로』- 이 작품에서는 청순한 여인 데스데모나와 가장 난해한 인물 이야고를 통하여‘보이는 것’ 즉, 실재와 겉모습 사이의 갭이 가장 중요한 주제를 형성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신뢰와 명예, 가부장적인 정치 상황과 인종 문제 등 많은 주제와 다양한 해석을 보여준다.
『맥베스』 - 야망의 늪에 빠진 정직한 영혼이 악의 화신으로 파멸해 가는 이야기로 양심의 고통, 숙명적 비극과 인간의 고귀함을 보여준다.
『리어왕』 - 배반, 질투, 증오, 욕망, 사랑과 ‘언어’ 사이의 갈등이 빚어내는 광대한 인간 내면의 세계에서 갈등과 그로 인한 고통을 보여준다.

2. 철학자 니체는 그 인생에서 장기에 걸치는 병과 아픔을 경험해, 아픔의 의미라는 것을 삶의 의미 전반에 관련되는 것으로서 취급했다. 그가 좋게 알려진 문장 안에는 이하와 같은, 분명하게 아픔에 관련되는 것이 있다:

'너는 쾌락에 대해 옳다고 말했던 적이 있나?
오오 내 친구여, 그러면 너는 또 모든 아픔에도 옳다고 말했다.
모든 것은 서로 사랑 속에 결합되어 얽히고 있다.'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보다 강하게 한다.'

고통과 마음의 이론편집

아픔의 경험은 여러가지 철학자에 의해서 여러가지 타입의 심리철학의 분석을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 데이비드 루이스는 그의 논문 '광인의 고통과 화성인의 고통' 중에서, 그류의 기능주의를 증명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타입의 아픔의 제예를 들고 있다. 그는 광인의 고통을 광인 중에서 생기는 아픔에 대해서 정의한다. 그 광인은 우리가 보통 '아픔'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를 격통 가운데 외쳐 구르게 하는 원인이 되지 않고, 오히려 예를 들면 매우 집중시켜 수학에 강하게 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하는 방법으로, 어쨌든 '배선이 어긋나' ("wires crossed") 있다. 화성인의 고통은 그에게, 우리의 아픔과 같은 인과적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아픔이지만, 그 아픔에 대해서는 매우 다른 생리학적 인지 기구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화성인은 축삭의 발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체내의 복잡한 수압 시스템의 활성화에 의해서 아픔을 느낀다). 루이스가 주장하려면, 이러한 현상의 양쪽 모두가 아픔이며, 마음에 대한 어떤 일관한 이론에서도 고려돼야 한다고 한다.

관련 항목편집

참고 문헌편집

외부 링크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