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산 한씨

한국의 성씨

곡산 한씨(谷山 韓氏)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황해북도 곡산군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본관이다.

곡산 한씨
谷山 韓氏
나라대한민국
관향황해북도 곡산군
시조한예(韓銳)
주요 인물한옹, 한권, 한여유, 한이원, 한덕전, 한영석
인구(2015년)6,266명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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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한예(韓銳)는 중국 송(宋)나라 시대의 8학사(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1206년(고려 희종 2년) 고려에 들어와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로 곡산군(谷山郡)에 봉해졌다.

2세손 한희(韓禧)가 고려 시대의 밀직부사를 지냈고, 3세손 한익(韓翊)은 판도판서를 지냈으며, 4세손 한진(韓瑨)은 정당문학에 올랐다. 5세손 한방좌(韓邦佐)와 6세손 한옹(韓雍)은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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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산(谷山)은 황해북도 북동부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고구려 때에는 십곡성(十谷城)이라 불렸다. 1392년 고려 왕조가 멸국된 이후로 조선 왕조가 창건되고 나서 1393년(태조 2)에는 곡산으로 개칭하였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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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옹(韓雍, 1352년 ~ 1425년): 고려조에 장하(張夏)의 천거로 사천감무가 되었고, 조선 개국 후 병조참의 등을 거쳐 1410년 충청도관찰사, 1411년 한성부윤, 1414년 경상도관찰사·풍해평안도도안무사(豊海平安道都安撫使), 1415년 판충주목사(判忠州牧事) 등을 거쳐 1419년(세종 1) 개성유후사유후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평절(平節)이다.
  • 한여유(韓汝愈, 1642년 ~ 1709년): 저서로 『둔옹집(遁翁集)』이 있고, 1741년(영조 25)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으로 추증되었다.
  • 한이원(韓以原, 1651년 ~ 1720년): 1687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감찰이 되었다가 1692년 결성현감을 거쳐, 1694년 전적을 역임하고 평안도도사로 나갔다. 1701년 충청도도사를 거쳐 병조정랑이 되었다. 고산찰방, 장령, 해미현감을 거쳐 1716년 장악원정이 되었고, 1718년 사복시정에 이르렀다.
  • 한덕전(韓德全, 1685년 ~ ?): 한이원의 아들. 1717년(숙종 4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정언, 장령 등을 거쳐 1733년 승지가 되었다.
  • 한시유(韓是愈)
  • 한문건(韓文健)
  • 한영석(韓永錫, 1938년 ~ ): 제29대 법무부 차관

과거 급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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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산 한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4명을 배출하였다.[1]

문과

한권(韓淃) 한덕전(韓德全) 한덕후(韓德厚) 한이원(韓以原)

무과

한미수(韓眉壽)

생원시

한극효(韓克孝) 한덕서(韓德瑞) 한덕후(韓德厚) 한명길(韓命吉) 한석응(韓錫應) 한익상(韓翊相) 한재원(韓載原)

진사시

한국관(韓國觀) 한국기(韓國琦) 한덕옥(韓德玉) 한덕일(韓德一) 한문건(韓文健) 한수원(韓受原) 한시유(韓是愈) 한이원(韓以原)

집성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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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금척리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아랫말)
  • 경상북도 경주시 광명동
  • 경상북도 경주시 아화리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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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5년 4,722가구 21,195명
  • 2000년 1,562가구 4,917명
  • 2015년 6,266명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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