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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수배 사건 25시

공개수배 사건 25시》는 대한민국 한국방송공사KBS 2TV에서 방송된 범죄 안전지대 프로그램으로 1998년 2월 18일부터 2001년 4월 28일까지 방영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모체는 1993년 방송 개시된 사건 25시로,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방영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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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수배 사건 25시
장르 범죄,수사
방송 국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방송 채널 KBS 2TV
방송 기간 1998년 2월 18일 ~ 2001년 4월 28일
방송 시간 역대 방송시간 참조
방송 분량 역대 방송분량 참조
방송 횟수 160부작
출연자 역대 출연자 참조
음성 한국어
후편 특종! 사건파일

목차

방송시간편집

방송 채널 방송 기간 방송 시간
KBS 2TV 1998년 2월 18일 ~ 2000년 4월 26일 매주 수요일 밤 9시 50분 ~ 10시 50분 (1시간)
2000년 5월 6일 ~ 2000년 7월 22일 매주 토요일 밤 9시 20분 ~ 10시 20분 (1시간)
2000년 7월 29일 ~ 2001년 4월 28일 매주 토요일 밤 9시 40분 ~ 10시 30분 (50분)

역대 진행자편집

기수 진행자 진행 기간
1대 백운기 1998년 2월 18일 ~ 1999년 4월 28일
2대 박선규 1999년 5월 5일 ~ 2000년 7월 22일
3대 배종호 2000년 7월 29일 ~ 2001년 4월 28일

진행자 뒷이야기편집

  • 1기 진행자였던 백운기 당시 기자는 2013년 초 KBS국장으로 선출되어 KBS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 2기 진행자였던 박선규 당시 기자는 2008년 초 한나라당에 입당한 후 현재는 청와대 제1대변인으로 근무하고 있다.
  • 3기 진행자였던 배종호 당시 기자는 2007년 말 손학규 캠프에 합류하였고 이후 민주당에 입당하고 지금은 자신의 출신지역인 목포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1993년~1994년에 방영된 <사건 25시> 진행자였던 이윤성 당시 기자는 1996년 초 신한국당에 입당하여 현재 4선 국회의원으로 활동중이다.

개요편집

갈수록 심해지는 범죄를 예방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기획된 프로그램으로, 3년 2개월, 총 160회 방송하는 동안 총 498명의 용의자를 공개수배하여 250명이 검거되거나 자수하였으며, 16건의 변사자 신원을 수배하여 그 중 5건의 범인을 검거하는 등의 큰 성과를 거뒀다. 이에 경찰청에서는 2001년 5월 28일 공개수배 사건 25시 제작진 9명에게 표창을 수여하였다.

그 이후, 6년간의 공백을 깨고, 2007년 5월 3일부터는 특명 공개수배라는 프로그램으로 부활하여 방영된 바 있다.

주요 해결 사건편집

아래에 적힌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 1998년 3월 11일 방송분에서는 1997년 1월 초 전라남도 신안군에서 결혼을 10일 앞둔 약혼녀 오주연을 살해하고 달아난 약혼남 최진혁과 애인 정효영을 공개수배하였다. 이후 2년 넘게 범인에 대한 뚜렷한 단서가 없이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듯했으나, 2000년 8월 목포경찰서에 걸려온 한 미국 교민의 제보전화로 인해 수사가 재개되었다.
    • 사실 공개수배 사건 25시는 범인 및 출연한 재연배우들의 인권 보호 차원에서 공식적으로는 방송분을 판매하지 않지만 비공식적으로 녹화된 비디오 테이프가 외국의 한인 마을을 중심으로 간간이 유포되었는데, 바로 이 비디오 중에서 1998년 3월 11일자 방송분을 본 미국 LA의 교민이 방송에 나온 약혼녀 살인사건의 범인을 집 근처에서 목격하고 제보한 것이었다. 이에 목포경찰서는 인터폴과의 공조 끝에 최진혁과 정효영을 2000년 10월 17일 검거하여 목포로 압송하였다.[1]
    • 1997년 봄 두 명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지만, 최진혁과 정효영은 결혼자금과 친구들로부터 빌린 돈 총 1300여만원중에서 500만원을 들여 위조여권을 구입, 최진혁은 1997년 11월, 정효영은 1998년 1월에 김포공항을 통해 미국 LA로 도주하였다. 이후 멕시칸 빈민촌에서 슈퍼마켓 점원으로 일하며 도피생활을 하던 도중, 마침 1998년 3월 11일자 공개수배 사건 25시 테이프를 우연히 보게 된 교민의 눈에 띄어 결국 검거에 이른 것이었다.
    • 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1998년 3월 11일자 공개수배 사건 25시 였지만, 사실 이 사건은 1997년 2월 4일과 12월 16일자 MBC 경찰청 사람들에서도 방영된 바 있었다. 특히 두 차례 방송분에서 나레이션을 맡은 목포경찰서 형사는 최진혁과 정효영의 해외도피 가능성을 언급했었다.
    • 당초 이 사건은 경찰청 사람들과 공개수배 사건 25시 둘 다 최진혁의 범행인 것으로 추정했으나, 목포경찰서의 정밀조사 결과 오주연을 살해한 진범은 정효영이었고 최진혁은 직접적인 살인에 가담하지는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결국 최진혁도 함께 사체 유기에 가담하였으며, 범행을 저지른 정효영과 함께 달아났다는 점에서 공범으로 같이 구속되었다
  • 1998년 4월 22일 방송분에서는 결혼한 옛 애인을 살해한 용의자 남진규와 택시 강도 살인 용의자 남진성이 공개수배되었다. 사실 이 두 용의자는 형제지간이었다. 즉, 한 집에서 태어난 형제가 서로 다른 사건의 용의자로 각각 수배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당시 진행자도 "오늘 방송에서는 굉장히 놀라운 사실을 알려드리게 되었다."라는 발언을 오프닝에서 할 정도였다.
    • 남진규는 1998년 10월 7일 방송분에서 다시 수배되어 다음날 서울 은평구 구파발역에서 검거되었고, 남진성은 1998년 10월 21일 방송분에서 다시 수배되어 다음날 전남 화순군에서 검거되었다.
  • 1998년 6월 10일 방송분에서는 대구에서 발생한 강도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공개수배하였다. 가정주부를 구타하고 넥타이로 목졸라 살해한 범인들은 피해자의 현금카드를 들고 인근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 달아났는데, 이 과정에서 은행 CCTV에 얼굴이 찍힌 것이 방송에 나간 것이다. 방송 직후 범인의 인상착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고, 경찰의 탐문수사끝에 박우길과 윤대호가 검거되었다.
  • 1998년 7월 1일 방송분에서는 결혼사기 사건의 용의자들이 공개수배되었다. 범인 3명은 각각 명문대를 졸업한 건축사, 건축사 사무실 대표, 산부인과 의사를 사칭해 은행 여직원들에게 접근하여 교제하다가 "급하게 돈이 필요한데 금방 갚을테니 입금해달라."고 한 후 입금된 돈을 가로채 달아나는 수법을 썼다. 이 과정에서 여직원들이 은행돈을 임의로 입금시키는 바람에 업무상 횡령죄로 고발되었고 이를 수사하던 검찰측이 사건의 전모를 파악, KBS 제작진에게 방송 의뢰를 하게 되었다.
    • 범인들이 통장 개설에 사용된 주민등록증은 전직 경찰관의 명의인 것으로 밝혀져 범인의 신원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은행에 돈을 찾으러 왔을 때 찍힌 CCTV 사진을 통해 공개수배되었고, 이를 알아본 시청자의 제보로 범인 3명의 신원이 정우진, 금영수, 백대환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3명 모두 소재가 불분명했기에 7월 29일 방영분에서 다시 한 번 공개수배되었으며 시청자의 제보로 8월 3일에 정우진과 금영수가 검거되었다.
  • 1998년 9월 23일 방송분 초반부에서는 경기도 화성에서 발견된 40대 여자 변사체의 신원을 긴급수배하였다. 시체의 골격을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몽타쥬로 복원한 것을 방송에 내보냈는데, 이를 본 피해자 가족의 제보로 변사체가 화성 인근의 공장에서 일하던 정영미라는 것이 밝혀졌다.
    • 화성경찰서의 수사 결과, 평소에 정영미는 일하던 공장의 사장 박경태와 체불임금 문제로 수차례 말다툼을 벌였다는 정황이 확인되었고, 박경태의 행적을 조사한 결과 수상한 점이 발견되어 유력한 용의자로 소환하여 조사하였다. 그 결과 정영미가 회식 직후 박경태에게 체불임금을 달라며 항의하였고, 이에 박경태가 우발적으로 둔기로 정영미의 머리를 내리쳐 숨지게 한 후에 화성 인근의 야산에 암매장했음을 확인하였다.
  • 1998년 10월 7일 방송분에서는 여관 주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달아나는 일명 '방치기' 사기사건의 용의자들이 수배되었는데, 이들은 이미 1993년 9월 사건 25시에서도 동일한 사건으로 수배되어 검거된 전력이 있었다. 4년 후 형집행정지로 출소한 후 또 다시 같은 범죄를 저질렀고, 결국 이들은 검거 후에 또 같은 프로그램에서 수배된 유일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개수배된 3명 가운데 1명인 문영호만 1999년 5월 검거되었다.
  • 1998년 12월 2일 방송분에서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아파트에서 주부가 성폭행 당한 뒤 피살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확보된 체액을 통해 용의자의 혈액형이 AB형이라는 점이 밝혀졌으며 인근 ATM에서 현금을 인출하면서 찍힌 흐릿한 CCTV 화면으로 공개수배했으나,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해 장기 미제사건으로 빠졌다. 그러다가 2010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돼 공소시효를 연장할 수 있었으며 사건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형사가 2016년 재수사를 통해 압축한 용의자중 1명이 버린 담배꽁초를 토대로 DNA가 일치함을 확인하여 경기도 양주의 아파트에서 범인 오기진을 검거했다.
  • 1998년 12월 16일 방송분에서는 두 딸과 어머니가 함께 전세금 대출 사기를 저지르고 달아난 사건을 방영하였다. 이 날 방송분에서는 주범인 어머니 이순영과, 두 딸 우진희, 우진경을 수배하였는데, 이 날 오전 방송예고를 본 이순영이 사건 25시 제작팀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로서 딸과 함께 공개수배되는 것이 고통스럽다."라는 말을 하였고, 생방송 도중 진행자가 이를 언급하면서 "그러한 고통을 알고 있다면 이 추운 겨울에 사기를 당해 돈을 날리고 어디로 갈지 막막한 피해자들의 고통을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순영씨, 자수하십시오."라는 멘트를 하였다. 이 방송을 본 어머니 이순영과 둘째 딸 우진경은 자수하였고, 첫째 딸 우진희는 도주하였으나 얼마 못가 검거되었다.
  • 1998년 12월 23일 방송분에서는 실종된 3세 여자 어린이 오별 양을 수배하였다. 특히 아버지 오금동이 50세에 낳은 늦둥이였기에 꼭 찾고 싶다고 말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소개되었는데, 방송 직후 오별 양을 보호하고 있던 시청자의 제보로 다음날인 12월 24일 오금동은 딸과 다시 만났다. 오금동은 이후 공개수배 사건 25시 제작팀을 찾아 감사의 뜻을 전했다.
  • 1999년 2월 10일 방송분에서는 경북 경주시에서 발생한 택시 강도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공개수배하였다. 당시 단서라고는 현금지급기 CCTV에 찍힌 용의자의 사진 한 장과 손가락 모양 정도였지만, 시청자의 제보로 2월 13일 새벽 경기도 안양에서 공개수배된 용의자 윤상호를 검거하였고 나머지 1명도 검거하였다.[2]
  • 1999년 2월 24일 방송분에서는 미성년자를 고용해 윤락 영업을 시킨 뒤 경찰의 단속을 피해 달아난 악덕 업주 박태식을 공개수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박태식은 방송 당일 오전 TV를 보다가 자신이 공개수배된다는 사실을 알고 경찰서에 자수해왔다.
  • 1999년 3월 3일 방송분에서는 1996년 8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70대 미국 노인을 권총으로 살해한 뒤 1998년 3월 한국으로 도주한 한국계 미국인 데이비드 남(국내명 남준현)을 공개수배하였다. 방송 직후 비슷한 사람이 경주의 도자기 업체에서 근무하는 것을 봤다는 제보 전화가 들어왔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경주 시내의 한 호텔에서 검거되었다. 방송된 지 불과 4시간 만인 3월 4일 새벽 2시경이었다. 특히 이 사건은 FBI 요원과 한국 인터폴이 직접 KBS 사무실을 찾아와 의뢰한 사건이라 비상한 관심을 끌었고, 공개수배 방송 후 4시간 만에 검거되자 FBI측에서도 놀랄 정도였다.[3]
  • 1999년 3월 17일 방송분에서는 경기도 여주군 뺑소니 사건의 용의자를 공개수배하였다. 평소 친분이 있던 마을 주민 강철용의 차를 몰고 가던 이두석은 강철용의 어머니를 치어 숨지게 한 뒤 그대로 달아났다. 이후 1년 넘게 행방이 묘연해 사건이 미제로 끝나는듯 했으나, 방송을 기억하고 있던 시청자의 제보로 2000년 6월 17일 안산에서 검거되었다.
  • 1999년 3월 24일 방송분에서는 서울 독산동의 한 공터에 놓여있던 냉장고 안에서 발견된 토막 변사체의 신원을 수배하였다. 몽타쥬 작성을 하지 않은채 옷과 가방 등의 유류품을 방송에 내보냈는데, 평소 피해자와 알고 지내던 인근 주민의 제보로 피해자가 조선족 동포 최경희라는 것을 밝혀냈고, 최경희와 동거하던 조선족 강우만이 최근 잠적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금천경찰서는 그의 행적을 조사하여 마침내 3월 27일 안산에서 검거하였다.
  • 1999년 4월 7일 방송분에서는 광주 노숙자 피살 사건의 용의자 엄달수와, 부산 개 절도 사건 용의자 이태진을 공개수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누나에게 안부전화를 걸었다가 방송 사실을 알게 된 엄달수가 방송 당일 아침에 자수하였고, 이태진 역시 방송예고를 보고 고심 끝에 경찰서에 자수하였다. 결국 방송 명칭이 무색하게 이 날은 정작 공개수배할 용의자가 없었다.
  • 1999년 6월 30일 방송분에서는 경북 칠곡군 팔공산 자락에서 발견된 토막 변사체를 수배하였다. 4월 2일 발견된 변사체는 살해된 지 약 5~6개월 가까이 지나 부패가 너무 심하게 진행된 상태였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 롤스트레이트 퍼머 단발머리, 자궁내 피임기구(루프), 사망 직전 토란대가 든 음식을 먹었다는 등의 여러 신체적 특성을 밝혀낼 수 있었다. 방송에서는 이러한 정보뿐만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의 감수하에 변사체의 몽타쥬를 복원해내 방송에 내보냈고 그 결과 전국에서 177건의 제보가 쏟아져들어오면서 답보 상태에 놓여있던 수사가 활기를 띠게 되었다.
    • 방송 이후 들어온 제보를 하나하나 조사하던 칠곡경찰서는 대구에 살던 주부 권영희의 제보를 예의주시하게 된다. 우선 변사체의 사망 시점이 1998년 9월 말에서 10월 초인데, 동생 권주희가 실종된 날이 바로 1998년 10월 10일이었고 특히 실종 당일에 계모임에서 토란대가 들어간 매운탕을 먹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에 칠곡경찰서는 권영희의 혈액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유전자 감식을 의뢰했고, 변사자와 권영희가 자매 사이라는 결과가 9월 초에 밝혀지면서 사체 발견 5개월 만에 변사자의 신원이 권주희로 확인되었다.
    • 피해자 권주희의 주변인물을 대상으로 수사를 하던 칠곡경찰서는 권주희의 실종 당일 남편 박정규의 행적에서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했고, 자택을 수색한 결과 욕실에서 권주희의 혈흔을 채취하였다. 박정규는 1998년 10월 아내 권주희와 말다툼을 벌이다가 격분,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되었다고 자백하여 사건이 해결되었다. 사건 전모는 1999년 9월 22일자 방송분에서 다뤄졌으며, 타 방송사 뉴스에서도 보도되었다.[4]
  • 1999년 8월 25일 방송분에서는 환자로 가장해 병원에 들어간 후 금품을 갈취한 연쇄 강도 사건의 용의자 문형철을 공개수배하였다. 방송 이후 고향인 광주에 내려가 숨어 지내던 문형철은 방송을 기억하고 있던 시청자의 제보로 2000년 6월 17일 검거되었다.
  • 2000년 2월 23일 방송분에서는 부산 북구 금곡동에서 발생한 뺑소니 사망 사건이 방영되었다. 동아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공미라양이 지하철 2호선 금곡역에서 내려 집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던 도중 신호를 무시한 승용차에 치여 숨진 사건으로, 당시 동아대 총장과 학생들의 제보로 방영이 성사된 것이었다. 목격자조차 없던 상황에서 유일한 단서는 현장에서 발견된 차량 부품 일부밖에 없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정밀조사 결과 해당 부품은 92~93년식 현대 엑셀 자동차용으로 차량 색깔이 짙은 회색이라는 특징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재구성한 차량을 사건 25시 방송에 내보낸 것이다.
    • 생방송 도중 사건 25시 스튜디오에는 물론이고 방송 이후 부산북부경찰서에도 제보가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왔는데, 그 중에서 결정적인 제보를 한 사람은 부산 북구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이성배였다. 사건 25시 방송을 본 그는 며칠 전 자신이 정비했던 차량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점을 의심스럽게 여겨 신고하게 된 것이었다. 이성배가 보관하고 있던 영수증을 통해 차량번호를 확인한 부산북부경찰서는 방송 이틀만인 2월 25일 차량 주인 김석철을 검거해 조사하였고 범행 일체를 자백받아 사건이 해결되었다.(김석철은 당시 음주운전을 했었다.) 부산북부경찰서와 동아대학교는 사건 25시 제작진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 2000년 4월 12일 방송분에서는 부산 서대신동에서 발생한 강도 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공개수배하였다. 당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탓에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한 몽타쥬와 인상착의 정도를 방송하였는데, 바로 방송 당일 천안경찰서에서 강도사건으로 조사를 받고 있던 정두철이 형사들과 함께 이 방송을 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바로 그 범인이라고 증언하여 사건이 해결되었다.
  • 2000년 4월 12일 방송분에서는 인천 주식투자 사기사건의 용의자 송순자를 공개수배하였다. 주식에 대해 잘 모르는 동네 주부들에게 배당금을 주겠다는 명목으로 접근해 돈을 뜯어낸 뒤 달아난 사건으로, 송순자는 공개수배된 이후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도리어 돈을 돌려줄 수 없다는 식의 협박을 하는 뻔뻔함을 보였다. 이에 사건 25시 제작진은 6월 10일 방송에서 다시 한 번 공개수배하였고, 방송 3일만인 6월 13일 인천에서 검거되었다.
  • 2000년 6월 24일자 방송분에서는 부산 초량동의 한 금은방에서 발생한 강도살인 사건 용의자 이한재를 공개수배하였으나 한동안 검거되지 않다가, 12월 23일자 특집 방송분에서 다시 한 번 수배되었고, 2001년 3월 2일에 인천에서 시청자의 제보로 검거되었다.[5]
  • 2000년 7월 29일자 방송분에서는 제천에서 발생한 여관 여주인 살인사건 용의자 노정일을 공개 수배하였다. 사건직후 동두천과 의정부 일대를 떠돌다 다시 제천으로 돌아온 노정일은 주택가의 절도를 일삼다 잠복한 경찰에 의해 2000년 8월 23일 검거되었다
  • 2000년 8월 26일자 방송분에서는 충북 충주호에서 발견된 20대 여자 변사체의 신원을 수배하였다. 발견 당시 입고 있던 옷,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복원한 몽타쥬를 방송에 내보냈는데, 이 방송을 시청한 피해자의 가족이 경찰에 신고하여 8월 30일에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졌다. 경찰은 피해자의 주변 인물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하였고, 9월 1일에 용의자인 동거남 최영호를 검거하였다.
  • 2000년 11월 4일자 방송분에서는 한국인의 청부를 받고 일본인을 살해한 청부 살인 용의자 서광진이 수배된 바 있다. 이 방송을 기억하고 있던 시청자의 제보로 2002년 5월에 미국에서 검거되어 한국으로 송환되었다.(아쉽게도 이 방송이 종영된 이후였다.)[6]
  • 2000년 11월 18일자 방송분에서는 수원에서 발생한 사기사건의 용의자 심진희를 공개수배하였다. 결혼을 빙자하거나 친분을 위장하여 사기를 벌였던 용의자는 자신을 수배한 경찰관의 장모집에서 월세를 살다가 방송을 본 장모의 신고로 방송 하루 만인 2000년 11월 19일 검거되었다.
  • 2000년 12월 2일 방송분에서는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범일동역에서 발생한 노숙자 피살 사건을 방송하였다. 피해자의 신원은 밝혔지만, 전혀 목격자가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옷과 흉기를 방송에 내보냈고, 방송 직후 "범일동역에서 그 옷을 입은 사람을 봤다."는 제보가 들어왔고, 한달도 채 안되어 대구에서 범인 정상원을 검거하였다.
  • 2000년 12월 16일자 방송분에서는 전남 고흥에서 발생한 새마을금고 이사장 피살 사건의 용의자 이정식이 수배되었다. 피해자는 고흥 모 새마을금고 이사장으로, 부실금고로 지정된 이웃 마을의 동광 새마을금고를 인수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부채를 떠안게 되어 이정식을 비롯한 동광 새마을금고 임직원들과 법정다툼을 벌이던 상황이었다.[7][8] 그러다가 피해자가 2000년 10월 17일 이정식을 만나러 간다며 나간 뒤 실종되었고 얼마 후 변사체로 발견되자 고흥경찰서가 이정식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공개수배한 것이다.
    • 이정식은 사건 발생 직후인 2000년 10월 19일 필리핀에 출국, 방송 당시에는 소재지가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방송을 시청한 후 다음날 필리핀으로 출국했던 제보자가 우연히 현지에서 이정식을 목격하여 경찰에 신고하였고, 고흥경찰서는 인터폴과의 협조를 통해 이정식의 필리핀 자택 인근에서 잠복수사를 하여 마침내 이정식을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 2001년 2월 24일자 방송분에서는 대전에서 발생한 뺑소니 사망사고의 용의자 박태원을 공개수배하였다. 재연 과정이 없이 1분 가량의 짧은 분량으로 방영되었고 이후로 검거되지 않은 채 방송이 끝났지만, 무려 6년이 지난 2007년 9월에 방송을 기억하고 있던 어느 시민의 제보로 서울에서 검거되었다.[9]

옥의 티편집

  • 1998년 4월 29일 방송분에서는 경기도 양평군 남한강변에서 발견된 15세 소녀로 추정되는 변사체의 신원을 수배하였다. 부패 정도가 심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기에 방송에서는 옷과 팔찌, 목걸이, 반지 등만을 내보냈다. 이후 "3월경 양평까지 태워다 준 소녀가 틀림없다."라는 택시기사의 제보에서부터, "그 반지를 친구가 갖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라는 여고생의 제보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제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이에 고무된 제작진과 양평경찰서는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를 찾아가 변사자의 몽타쥬를 제작하였고, 5월 27일 다시 한 번 방송하였다. 그러나 쏟아지는 제보에도 불구하고 신원확인이 되지 않아 양평경찰서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 그러던 중 1998년 5월 29일 홍천 - 춘천간 56번 국도변 배수로에서 트럭운전사에 의해 35~55세 가량되는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6월 23일자 MBC '경찰청 사람들'을 통해 수배되었다. 그리고 이 방송을 시청한 피해자의 언니 서정연이 춘천경찰서에 제보하였고, 다음날인 6월 24일에 피해자의 신원이 서귀연으로 확인되었다. 인천에서 전영진과 동거를 하고 있었다는 진술을 받은 춘천경찰서는 전영진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6월 25일 새벽 춘천시 석사동에서 전영진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 전영진은 가출한 서귀연을 찾던 도중, 그녀의 딸 박지은에게 행방을 물었으나 자신에게 반항하자 박양을 살해하고 경기도 양평군 남한강변에 유기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 집에 돌아온 서귀연과 말다툼끝에 살해하여 춘천 국도변에 유기한 것이다. 당초 춘천경찰서는 춘천 변사체에 무게를 두고 수사했지만, 범인의 자백에 의해 양평 변사체 사건 역시 동일범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결론적으로, 전영진이 살해한 모녀 중에서 딸인 박지은은 공개수배 사건 25시를 통해서, 엄마인 서귀연은 경찰청 사람들에서 수배되었는데, 범인과 가장 가까웠던 서귀연을 수배한 경찰청 사람들로 인해 범인을 검거하게 된 것이다.
    • 1998년 6월 23일자 경찰청 사람들을 시청하던 서정연이 방송에서 수배한 변사자가 동생인 서귀연임을 확신하게 된 것은 바로 4~5년 이내에 한 것으로 추정되는 뇌수술 흔적, 그리고 긴 생머리라는 신체적 특징이었다. 하지만 1998년 7월 8일자 공개수배 사건 25시에서는 박지은에 대한 후속 보도를 하면서, 우선 박지은의 신원이 자사 방송을 통해서 밝혀졌다는 언급을 하였고 서귀연에 대한 대목에서는 언니 서정연이 오히려 신체적인 특징으로는 확인을 못하고 현장에서 발견된 외투를 통해서 확인을 했다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하였다.(경찰청 사람들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서정연은 분명히 뇌수술 흔적과 긴 생머리를 보고 동생인 것 같아서 제보했다고 언급했으며, 이것이 전영진을 검거하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 결론적으로 범인 검거의 결정적인 단서는 MBC 경찰청 사람들이었으나, 공개수배 사건 25시에서는 마치 자신들의 방송을 통해 범인 검거의 실마리가 제공되었다는 식으로 교묘하게 왜곡하여 방영한 것이다.
  • 2000년 10월 28일에는 여권 위조 사기단의 공범인 조창수씨를 공개수배하는 방송이 다뤄졌다. 헌데, 사실 조창수씨는 범행과 전혀 무관한 사람이었고, 조창수씨가 분실한 주민등록증을 사기단의 주범 권정태가 도용한 것을 경찰이 정확한 확인을 하지 않은 채 공개수배 사건 25시에 방송을 의뢰한 것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이 프로그램의 종영 이후인 2001년 10월 14일 서울지방법원에서는 조창수씨에게 36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10]

출연자 뒷이야기편집

방송 사고편집

심승남 당시 대구 서부경찰서 뺑소니사건 전담반장이 기자와 이야기 하는 도중 의자가 뒤로밀려 넘어지는 방송사고가 났다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