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음씨(槐山陰氏)는 충청북도 괴산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괴산 음씨
槐山陰氏
나라한국
관향충청북도 괴산군
시조음정(陰鼎)
인구(2015년)3,239명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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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음씨(槐山 陰氏)의 시조(始祖) 음정(陰鼎)은 1083년(고려 문종(文宗) 37년) 문과(文科)에 장원(壯元) 급제하였다.[1]

과거 급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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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음씨는 조선시대 무과 급제자 2명을 배출하였다.[2]

  • 음응룡(陰應龍, 1599년생) : 조선 인조(仁祖) 14년(1636년) 병자(丙子) 별시(別試) 병과(丙科)
  • 음숙남(陰淑男, 1601년생) : 조선 인조(仁祖) 15년(1637년) 정축(丁丑) 별시(別試) 병과(丙科)

죽산 음씨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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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자료에서는 괴산 음씨가 죽산 음씨에서 분파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이다. 죽산 음씨의 시조 음준은 공민왕고려에 동래하였다고 하지만, 괴산 음씨의 시조 음정(陰鼎)은 이보다 훨씬 앞선 연대의 1083년(고려 문종(文宗) 37년) 문과에 장원급제한 인물이다.[3]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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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槐山)은 충청북도 괴산군의 지명이다. 금물노국(今勿奴國)과 잉근내군(仍斤內郡)이었다. 고구려 시대인 475년에는 잉근내현‧상모현(上芼縣)‧도서현(道西縣) 등으로 불렸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는 괴양현(塊壤縣)과 도서현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괴주(槐州)로 이름을 고쳤으며, 995년(성종 14)에는 괴주군(槐州郡)으로 중원도(中原道)에 속하였으나 1018년(현종 9)에 충주목(忠州牧)에 편입되면서 감무관(監務官)을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1403년(태종 3)에 지괴주사(知槐州事)로 승격되었다가 1413년(태종 13)에 분리하여 1456년(세조 2)에 괴산군(塊山郡)이라 고쳐 불렸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충청도 괴산군의 토성(土姓)으로 (強)·(安)·음(陰)·(皮) 4성이 기록되어 있다.[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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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고구려대에 음(陰)씨로 추정되는 음우(陰友)[5]음모(陰牟)[6]라는 인물이 활동하였다. 음우(陰友)는 고구려재상이었다.[7]

음모(陰牟)는 고구려 미천왕이 고난을 겪을 때 그를 숨겨준 고구려의 백성이다.[8]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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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5000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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