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임(權大任, 1595년 12월 24일(음력 11월 24일) ~ 1645년 12월 13일(음력 10월 26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홍보(弘輔), 본관은 안동이다.[1] 선조의 딸 정선옹주와 결혼했으며 글씨를 잘 썼다. 선조의 막내딸 정화옹주의 남편 동창위(東昌尉) 권대항(權大恒)은 재종동생이다.[2]

생애 편집

예조판서 권협(權悏)의 손자이자 권신중(權信中)의 아들로 어머니는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대왕(世宗大王)의 아들 광평대군(廣平大君)의 7세손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1] 1604년 정선옹주와 혼인해 길성위에 봉해졌다.[3] 서예에 뛰어나 장인어른인 선조로부터 총애를 받았으며,[1] 1618년에는 한효순, 이이첨 등이 인목대비 폐모론을 주장할 때 함께 정청에 나아갔다.[4] 인조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인조를 호종하였다. 1635년(인조 13년) 선무공신 3등이었던 권협의 적손이라는 이유로 길성군(吉城君)에 봉해졌고,[1] 병자호란 때에는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가는 어가를 수행하였다. 그밖에 도총관 등을 역임하였고, 1645년 12월 13일(인조 23년 음력 10월 26일) 향년 51세를 일기로 죽었다.[1]

각주 편집

  1. 《국조인물고》 권6 국척(國戚) 권대임의 묘갈명(墓碣銘)
  2. 《청장관전서》 제49권
  3. 《조선왕조실록》 선조 179권, 37년(1604 갑진 / 명 만력(萬曆) 32년) 윤9월 8일(을유) 1번째기사
  4. 《조선왕조실록》 광해 123권, 10년(1618 무오 / 명 만력(萬曆) 46년) 1월 4일(갑자) 5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