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요미즈데라

기요미즈데라의 본당과 무대

기요미즈데라(일본어: 清水寺, きよみずでら 키요미즈데라[*])는 교토부 교토 시 히가시야마 구에 있는 사원이다. 정식 이름으로 오토와산키요미즈데라(音羽山清水寺)로도 불린다. 본존은 천수관음, 개기(창립자)는 엔친이다. 관세음보살을 안치한 33곳 중 관음영지의 16번째 영지이다. 사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고도 교토의 문화재의 일부이다.

현재는 2020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하여 복원작업에 들어갔기 때문에, 가림막으로 완전히 가려져 있어 볼 수 없다.

기원과 역사편집

기요미즈데라는 헤이안 시대 초기에 설립되었다. 기요미즈데라는 778년에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에 의해 처음으로 세워졌다. 당시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는 현재 기요미즈데라가 있는 언덕의 아랫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막 출산한 아내의 산후조리를 위하여 사슴을 잡으러 나갔다고 한다. 사슴을 잡은 후 귀가하던 도중, 엔친이라는 이름을 가진 스님이 폭포 아래에서 독경을 하는 것을 보고 살생한 것을 참회하는 뜻으로 이 절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아내의 건강이 좋아지자 부부는 절에 관세음보살 상을 만들어 바쳤고, 이 보살상이 영험하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어 현재의 기요미즈데라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건물들은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명령에 의해 1633년에 재건된 것들이다. 사찰 건물 전체에 못이 하나도 쓰이지 않았다고 하여 유명하다. '기요미즈데라'라는 이름은 주변에 있는 언덕에서 흐르는 오토와 폭포에서 유래된 것인데, '기요미즈'라는 단어는 '청수(清水)', 즉 맑은 물을 의미한다.

절은 원래 법상종에 속한 사찰로, 헤이안시대 중기부터는 진언종을 겸종해왔다. 메이지시대 초기에는 일시적으로 "진언종제호파"에 존속되었으나 메이지18년(1885년)에 법상종으로 복귀하였다. 쇼와40년(1965년) 당시 주지 오니시료우케이가 "북법상종"을 입종해 법상종으로부터 독립했다.

현재편집

본당에는 큰 무대가 있고 산 허리에 놓여있는 긴 기둥에 의해 지지되어 있으며, 이 곳에 올라가면 도시의 인상적인 경치를 관람할 수 있다. 당시 에도 시대에는, 유명하거나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순례객들이나 참배객들을 위해 거대한 무대와 건물들을 짓는 것이 유행이었다.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것을 '기요미즈의 무대로에서 뛰어 내릴 생각으로'라고 표현하는데, 기요미즈데라의 고문서 조사에 의하면 실제로 뛰어 내린 사람은 1694년부터 1864년까지 234명이었고 그 생존률은 85.4%였다. 1872년에 정부가 뛰어내리는 것을 금지하면서 목책을 치는 등 대책을 세우면서 실제로 뛰어내리는 사람들의 수는 점차 잦아들었다.

본당의 밑에는 오토와 폭포가 있는데, 이 곳에서 오토와 폭포가 세 개의 물줄기로 나누어지면서 연못으로 떨어진다. 방문객들은 이 물을 마실 수 있는데, 이 물에는 치료의 힘이 있다고 여겨진다. 세 개의 물줄기는 각각 지혜, 연애, 장수를 상징한다는 풍문이 있는데, 이 세 개의 물줄기 중 오직 최대 두 가지만을 선택해야 하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욕심에 대한 벌을 받아 벌을 받는다는 설이 있다. 다만 기요미즈데라의 공식 웹사이트와 기록에 따라 이와 같은 주장이 증명된 적은 없다.

 
사랑의 돌을 만지는 관광객

절 내부에는 지슈 신사를 포함한 몇몇 신사들이 있다. 이 신사는 사랑과 연애의 신인 오쿠니누시에게 봉헌된 신사인데, 남녀 간의 인연을 맺어준다고 하여 유명하다. 지슈 신사에는 18m 간격으로 "사랑의 돌"이라는 돌이 두 개 있다. 눈을 감은 채로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걸어오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1] 실패할 경우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오랜 기간이 걸린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기요미즈데라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부적들과 향, 오미쿠지(행운의 종이)를 볼 수 있다. 이곳은 특히 축제 때 인기가 있는 장소로, 기요미즈데라 앞에 있는 거리는 축제 기간 동안 전통 축제 음식과 기념품들을 판매하는 특별 상점들로 채워진다.

2007년에 기요미즈데라는 신 세계7대 불가사의의 21개 후보 중 하나로 올랐으나, 그러나 최종적인 7개 명단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경내편집

본당편집

 
기요미즈데라의 본당

일본의 국보로, 1633년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기부금을 통해 재건됐다. "시미즈의 무대"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지붕은 요세무네즈쿠리(寄棟造)이며, 외부는 유약칠이 되어 있으며, 본당의 날개는 정면(남쪽면)의 양 옆으로 돌출되어 있다. 요세무네즈쿠리는 우진각 형식의 지붕 형태이며, 지붕 위에는 노송나무 껍질을 얇게 발라 만들어진 것이다. 본당의 전반부는 산비탈에 지어졌으며, 139개의 느티나무 기둥이 무대를 지탱하고 있다. 본당 건물에는 못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채로 건립되었다.

사진편집

좌표: 북위 34° 59′ 41.39″ 동경 135° 47′ 6.01″ / 북위 34.9948306° 동경 135.7850028°  / 34.9948306; 135.7850028

  1. “japanvisitor.com”. 2010년 8월 21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