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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각(金喬覺, 697년~794년)은 신라승려이다, 법명은 삭지장(釋地藏)입니다.

김교각
출생697년
사망794년 3월 26일
성별남성
국적신라
별칭지장보살
직업승려
종교불교
부모성덕왕

신라 성덕왕의 첫째 아들로 속명은 중경(重慶)이다. 24세에 당나라에서 출가하여 교각(喬覺)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안후이 성 구화산에서 화엄경을 설파하며,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의 화신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행적은 813년 중국 당나라 비경관(費冠卿)이 쓴 구화산 화성기(九華山化城寺記), 이용(李庸)이 편찬한 구화산지(九華山志) 등에 기록되어 있으며, 동 시대를 살았으며, 입적 후 19년 뒤에 쓰인 당나라 비경관(費冠卿)의 저서가 가장 정확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비경관은 구화산이 있는 지주 청양현 사람으로 학문이 뛰어났으며, 구화산 소미봉에 은거한 것으로 나타나 가장 객관적으로 구화산과 김교각을 관찰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생애편집

중국의 기록에는 신라의 왕자란 기록만 있을 뿐, 신라 어느 왕의 자손이라는 기록은 없다. 따라서 비경관의 기록에 있는 출생 연대로 유추하여 삼국사기의 기록을 참조해 볼 때, 김교각은 서기 697년 신라 제32대 효소왕 4년 서라벌 궁궐에서 태어난 김중경으로 파악된다. 그의 아버지는 후에 제33대 성덕왕이 된 신문왕의 둘째 아들 흥광대군 효명이다.

701년 김중경의 나이 4세 때 32대 효소왕을 대신하여 섭정을 하던 심목태후가 암살되고, 몇 년 후 효소왕이 후사없이 세상을 떠나자 흥광대군 효명이 왕위에 오르니 33대 성덕왕이다.

이후 김중경이 화랑이 되었을 때 친모 성정왕후와 성덕왕 사이에 후궁 문제로 갈등이 일어나 세속의 생활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721년 24세의 나이로 신라를 떠나 당나라 건너가 출가하여 불교에 귀의하였다.

이후 구화산에 자리를 잡고, 구도 활동을 하다가, 구화산에서 75년을 수련하여 99세에 열반에 들었다. 794년 제자들을 모아놓고 고별인사를 한 뒤 입적하였는데, 자신의 시신을 석함에 넣고 3년 후에도 썩지 않으면 등신불로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다. 열반에 든 후 산이 울면서 허물어 졌고 하늘에서는 천둥소리가 났다고 한다.

가계편집

  • 부왕 : 성덕왕(聖德王, 691~737 재위:702~737)
  • 모후 : ?

관련문헌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