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극일 (조선)
김극일(金克一, 1382년 ∼ 1456년)은 조선 초기의 인물로서 그의 지극한 효성이 후세에 알려져 효자정려를 받은 효자. 야은 길재의 문인이다. 사시(私諡)는 절효(節孝)이다.
생애편집
1382년 청도군 이서면의 소미동(少微洞)에서 태어났다. 9세 때에 홍분방(紅粉榜)에 급제하였으며, 15세 때는 고려말(高麗末)의 대학자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고 벼슬을 마다하고 양친 봉양에 애썼다. 어머니의 부스럼을 입으로 빨고 아버지가 이질로 고생했는데 대변을 맞보아 그 증세를 파악하며 아버지와 어머니 두분이 돌아가시고는 시묘살이 6년 할 때 호랑이가 무덤 곁에 와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자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주어 가축 기르듯 했다. 두 서모(庶母)를 섬기되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처럼 정성을 다했다.
1456년(세조 2년) 사육신(死六臣)이 화를 당하자 그는 이를 개탄하여 식음(食飮)을 끊고 앓다가 결국 그해에 75세로 별세하였다.
세종대왕 때 효자정려(孝子旌閭)이 세워졌고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 실렸다.
가계편집
선대편집
- 현조부 : 김용직(金龍直) - 사인(舍人)
- 현조모 : 함양 박씨(咸陽 朴氏) - 함양부원군 박충좌(朴忠佐)의 딸
- 고조부 : 김관(金管, 1250년(고려 고종 37년) ~ 1345년(충목왕 1년)) - 수로왕의 49세손. 충목왕 때 판도판서
- 고조모 : 나주 임씨(羅州 林氏) - 대사성 임의충(林宜衷)의 딸
- 증조부 : 김문숙(金文淑, 1293년(충렬왕 19년) ~ 1348년(충목왕 4년)) - 경덕재생
- 증조모 : 서산 류씨(瑞山 柳氏)
- 조부 : 김항(金沆, 1326년(충숙왕 13년) ~ 1382년(우왕 8년)) - 도제고 판관
- 종조부 : 김저(金佇)
- 조모 : 청주 고씨(淸州 高氏) - 학사 고지린(高知麟)의 딸
부인과 후손편집
- 부인 : 경주 이씨(慶州 李氏) - 한성판윤 이연(李湅)의 딸
- 장남 : 김건(金健)
- 자부 : 달성 서씨(達城 徐氏) - 서형수(徐亨秀)의 딸
- 손자 : 김태석(金泰碩)
- 손자 : 김예석(金禮碩)
- 손자 : 김원석(金元碩)
- 손자 : 김강석(金綱碩)
- 차남 : 김맹(金孟)
- 자부 : 용인 이씨(龍仁 李氏) - 이양(李讓)의 딸
- 삼남 : 김용(金勇)
- 자부 : 최씨(崔氏)
- 손자 : 김한손(金漢孫)
- 손자 : 김한석(金漢碩)
- 손자 : 김춘손(金春孫)
- 손자 : 김이손(金駬孫)
- 손자 : 김숙손(金驌孫)
- 손녀 : 전주 이씨 이연손(李連孫)에게 출가
- 사남 : 김순(金順)
- 자부 : 여산 송씨(礪山 宋氏) - 송포(宋褒)의 딸
- 손자 : 김백견(金伯堅) - 교리
- 손자 : 김중견(金仲堅) - 성균진사
- 손자 : 김숙견(金叔堅) - 생원진사
- 오남 : 김인(金靭)
- 자부 : 밀양 박씨(密陽 朴氏) - 박희맹(朴希孟)의 딸
- 손자 : 김유손(金騮孫)
- 손자 : 김태손(金泰孫) - 감역
- 손자 : 김철손(金鐵孫) - 참봉부교리
- 손자 : 김옥손(金玉孫) - 참봉
- 손자 : 김원손(金騵孫) - 감역
- 육남 : 김현(金鉉)
- 자부 : 창녕 성씨(昌寧 成氏) - 성이환(成以煥)의 딸
- 손자 : 김낙손(金洛孫)
- 손자 : 김석손(金𩤈孫)
- 손자 : 김광손(金輄孫)
- 손자 : 김형손(金亨孫)
- 손자 : 김붕손(金鵬孫)
- 손자 : 김인걸(金仁傑)
- 손자 : 김곤손(金鵾孫)
- 손자 : 김연손(金連孫)
- 손자 : 김세손(金世孫)
- 손녀 : 청도 김씨 김한은(金漢恩)에게 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