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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편집

생애편집

유신 시절편집

1966년 국회전문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해서, 1970년, 신민당의 유력 주자인 김영삼에 의해 발탁되었다. 이후 김영삼의 측근으로 활동하여 일명 좌동영 우형우 라는 별명이 생겨나기도 했다. 9대, 10대 경남 거창/산청/함양 지역구의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정치적으로 김영삼의 계보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최형우와 함께 대표적인 상도동 가신그룹으로 꼽히며 "좌동영 우형우"로 불렸다.

제5공화국 시절편집

1980년 신군부 집권이후 국회가 해산되어 국회의원직을 잃고 보안사에서 고초를 겪고, 정치규제에 묶여 출마하지 못하였지만, 김영삼과 김대중이 연합하여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에서 활동하였다. 정치규제가 풀리자 1985년 12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당시 야당 사상 최대의 의석수를 가졌던 103석 신한민주당의 원내총무를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되어 통일민주당의 부총재를 맡았다. 1990년 3당합당에서 김영삼을 따라 민자당에 합류하여 이후 민자당 원내총무, 1991년에는 정무장관을 맡았다.

생애 후반편집

한편 그는 국군보안사령부의 사찰대상 중 한사람이 되어 노태우 정부로부터 감시당하였는데, 1990년 10월 4일 오후 6시 40분쯤 한국외대 재학 중 민학투련 출신이었던, 탈영병 윤석양 이병의 폭로에 의해 밝혀졌다.[1] 윤석양은 탈영후 서울시 연지동 기독교회관 7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양심선언」을 통해 탈영당시 보안사에서 갖고나온 동향파악대상자 개인색인표 신상철,이들 내용이 입력된 컴퓨터디스킷을 공개했다.[1]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때문에 "뚝심의 정치인"이라고 불리며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을 누구보다 열망했으나, 김영삼이 대통령 당선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불과 대선 1년을 앞두고 으로 사망하였다.

경력편집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9대 총선 국회의원(경남 거창군·함양군·산청군) 9대 신민당      22.34% 28,595표 2위  
제10대 총선 국회의원(경남 거창군·함양군·산청군) 10대 신민당     32.16% 39,766표 2위  
제12대 총선 국회의원(경남 거창군·산청군·함양군) 12대 신한민주당     25.38% 32,839표 2위  
제13대 총선 국회의원(경남 거창군) 13대 통일민주당      59.82% 27,513표 1위  

미디어에서편집

각주편집

  1. 보안사, 저명인사 1300명 사찰 Archived 2012년 2월 5일 - 웨이백 머신 천주교인권위 1990년 10월 5일자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