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심언
조선 중기의 문신
김심언(金審言: 미상 ~ 1018년 11월 8일(음력 9월 28일)[1])은 성종에서 현종 대까지 활동한 문신으로, 시호는 문안(文安), 본관은 영광(靈光)이다.[2] 아내는 삼계군[3]부인 최씨(森溪郡夫人 崔氏)로,[4] 최섬(崔暹)은 김심언의 스승이자 장인이 된다.[2]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해 여러 관직 거쳐 우보궐 겸 기거주(右補闕 兼 起居注)가 되었다.[2] 990년(성종 9년) 7월에 성종에게 봉사 2조(封事二條)를 올리자, 성종이 교서를 내려 이를 칭찬했다.[2] 목종 대에는 지방관으로 나가 농사에 힘쓰고 백성들의 구휼에 힘썼다.[2] 현종이 즉위한 뒤 1011년(현종 2년)에는 예부상서[5], 1014년(현종 5년)에는 내사시랑 평장사[6]를 거쳐 서경유수(西京留守)를 지냈다.[7] 1013년(현종 4년)에는 지공거가 되어 과거를 주관했다.[8]
가계
편집김심언이 등장한 작품
편집전기 자료
편집- 《고려사》 권93, 〈열전〉6, 김심언
각주
편집- ↑ 《고려사》 권4, 〈세가〉4, 현종 9년(1018년) 9월 28일(정해)
- ↑ 가 나 다 라 마 《고려사》 권93, 〈열전〉6, 김심언
- ↑ 삼계(森溪)는 고려 때는 영광군에 속해있던 현이었다(《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전라도 영광군 삼계현). 지금의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이다.
- ↑ 《고려사》에는 김심언의 아내와 장인 최섬의 본관이 어디인지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김극검 묘지명〉에는 김극검의 고조부와 고조모를 서술하면서 김심언 아내의 본관이 같이 확인되었다.
김심언 아내의 본관 확인과 〈김극검 묘지명〉의 판독 및 내용 검토에 관해서는 황병성, 〈고려 시대 김극검과 정습명의 묘지명 고찰〉, 《열린 정신 인문학 연구》 24, 2015, 7~22 참조. 참고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삼계의 성으로 최(崔)가 기재되어 있다. 《세종실록》 권151, 지리지 전라도 나주목 영광군 참조. - ↑ 《고려사》 권4, 〈세가〉4, 현종 2년(1011년) 5월 5일(무인)
- ↑ 《고려사》 권4, 〈세가〉4, 현종 5년(1014년) 4월 21일(병자)
- ↑ 《고려사》 권4, 〈세가〉4, 현종 5년(1014년) 8월 26일(기묘)
- ↑ 《고려사》 권73, 〈지〉27, [선거1], 과거장, 현종 4년(1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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