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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김씨(靈光金氏)는 전라남도 영광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영광 김씨 (靈光 金氏)
관향전라남도 영광군
시조김심언(金審言), 또는 김태용(金台用)
집성촌전라남도 영광군,장흥군
주요 인물김보당, 김태용, 김필, 김괴, 김광원, 김해(金該), 김개, 김문평, 김주훈, 김민환, 김승환, 김성
인구(2015년)38,338명

역사편집

시조 김심언(金審言)은 경순왕의 후예로, 정주(靜州. 영광의 별호) 영광현(靈光縣) 사람이다. 고려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상서내사시랑평장사(尙書內使侍郞平章事) 서경유수(西京留守)를 역임하였다.

990년(성종 9) 상소문 <봉사 2조(封事二條)>를 올려 성종 때 본격화되는 유교적 정치이념 구현에 큰 공헌을 하였다. 고려 현종 즉위년에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예부상서(禮部尙書)가 되고, 1014년 (현종 5)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郎平章事)에 승진하고, 서경유수(西京留守)가 되었다. 시호(諡號)는 문안(文安)이다. 상시(常侍) 최섬(崔暹)의 사위이며 제자이다.[1][2] 후손에 김보당이 있었다.

시조에 대해편집

《김씨 분관록》·《증보문헌비고》·《조선씨족통보》등의 문헌에는 시조가 김태용(金台用)으로 고려조에 공조전서(工曺典書)를 역임하였다고 한다. 상서내사시랑(內史侍郞) 평장사(平章事) 김심언(金審言)의 후예라 한다.

김태용의 5세손 '김광원'(金光遠)은 홍문관 습독관(弘文館 習讀官)이었으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김태용의 후손 김덕생(金德生)은 무과 출신으로 벼슬이 좌영호군(左領護軍)이었고, 공신으로 동지중추원사에 추증되고 서원에 배향되었다.[3]

고려 김보당의 난 이후 일족이 멸문 지화를 당해 세계가 실전되어 선계를 알 수 없어, 각 파조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본관편집

영광(靈光)은 전라남도 북서부 해안에 인접한 지명으로 백제 때의 무호이군(武戶伊郡)을 통일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에 무령군(武靈郡)으로 고쳤다가, 고려초 940년(태조 23)에 영광군으로 바뀌었으며, 조선시대에도 영광군이라 했다. 영광(靈光)의 별호를 '정주'(靜州)라 하였다.

인물편집

고려편집

  • 김심언(金審言) : 김극검 고조부, 상서내사시랑평장사, 서경유수, 추봉 문하시중
  • 김화성(金化成) : 김극검 증조부, 추봉 상의봉어(尙衣奉御)
  • 김행경(金行瓊) : 김극검 조부, 문하시랑 동중서평장사
  • 김수녕(金守寧) : 김극검 부, 추봉 장사랑(將仕郎) 전중성(殿中省) 내급사(內給事)
  • 김극검(金克儉. 1068~1139) : 조부 김행경의 음서(蔭叙)로 벼슬길에 나아감, 감찰어사, 상서좌복야, 참지정사, 고려 인종때 태자소사(太子少師)를 역임, 시호는 기열(祁烈)
  • 김영부(金永夫) : 김극검의 아들, 중서시랑평장사 판병부사
  • 김보당(金甫當) : 고려 중기 문신,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 공부시랑, 부인은 이세연(李世延)의 여,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로서 경주에서 무신정권을 전복시켜 귀족정치로 환원하려고 경주에서 정치적 반란을 일으켜 죽임을 당함,
  • 김지당(金至當) : 합문지후(閤門祗候), 상서예부낭중(尙書禮部郞中). 부인은 최윤의 의(崔允儀)의 2녀.
  • 김연(金衍) :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 판도판서(版圖判書) - 영광파 파조
  • 김지(金祗) : 공민왕 11년(1362) 문과 급제, 당후관
  • 김사민(金思敏) : 창왕 즉위년(1388) 문과 급제, 목사
  • 김태용(金台用) : 공조전서(工曹典書) - 장흥파 파조

조선편집

  • 김덕생(金德生) : 동지중추원 부사에 증직.[4]
  • 김시(金時) : 감무.
  • 김경의(金敬義) : 평강 현감.
  • 김찬(金璨. ? ~ ?) : 부는 김경의(金敬義), 조부는 김시(金時), 증조부는 김태용(金台用), 홍문관 전한.
  • 김필(金㻶. 1426~1470) : 김찬의 아우, 조선 세종 ~ 성종 때의 문신, 1447년(세종 29) 식년시(式年試)에 합격하여 이조 낭청등을 역임하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란(癸酉靖亂)이 일어나자 이를 개탄하여 장흥으로 낙담하였다가 이후 조정에 복귀함. 1457년(세조 3) 중시(重試) 정과(丁科)에 합격하고 사헌부감찰, 이조정랑, 의정부 사인, 호조참의, 중추부 동지사, 충청·경기 관찰사 등을 지냄.
  • 김괴(金塊. 1450~1482) : 김필의 장자, 조선 예종 ~ 성종 때의 문신, 남효온과 교유하였으며, 봉사(奉事), 사간원 헌납 등을 지냄.
  • 김물(金勿. ? ~ ?) : 김필의 차자, 조선 성종 때의 문신. 전한, 사간원 헌납, 1489년(성종 20)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여 전한등을 지냄.
  • 김광원(金光遠. 1478~1550) : 김괴의 아들, 호는 월봉(月峰), 조광조의 문인, 조선 중종 ~ 명종 때의 학자, 기묘사화조광조가 사사되자 장흥에 돌아와 학문에만 전념함, 이조참판에 각각 추증되고, 장흥 예양서원(汭陽書院)에 배향됨.
  • 김우윤(金友尹. ? ~1597) : 부는 김효검(金孝儉), 1572년(선조 5) 별시 병과 합격, 문한관, 공조좌랑, 목사, 파직되어 고향 영광으로 돌아가 세상 일을 잊고 독서에만 열중하여 당송팔대가의 문집과 중국의 역대사서를 섭렵하였다.[5]
  • 김의정(金義精.? ~ ?) : 1450년(문종 즉위년) 식년시 을과 합격, 현감.
  • 김상은(金相殷. 1652~ ?) : 1679년(숙종 5) 식년시 병과 합격, 현감.
  • 김해(金該) : 지갑산군사, 병조판서에 추증.
  • 김개(金漑) : 부는 김이상(金履祥), 조부는 김승고(金承古), 증조부는 김조(金祚), 홍문관 부교리, 사헌부 지평, 관리로서 중종반정 운동을 펼쳐 불의에 항거하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 지조 있는 삶을 살고, 효행과 학문이 뛰어나 장성 수산사(水山祠)에 배향됨.
  • 김한로(金漢老. 1646~1687) : 부(父)는 김응정(金應精), 1675년(숙종 1) 식년시 병과 합격,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역임[6]
  • 김상은(金相殷. 1652~?) : 부(父)는 김세흠(金世欽), 1679년(숙종 5) 식년시 병과 합격, 현감(縣監) 역임
  • 김중태(金重泰. 1663~1735) : 부(父)는 김창로(金昌老), 1690년(숙종 16) 식년시 병과 합격, 찰방 역임[7]
  • 김급(金汲. 1661~?) : 부(父)는 김하명(金夏鳴), 1711년(숙종 37) 식년시 병과 합격, 전한
  • 김성유(金聖猷. 1711~?) : 부(父)는 김여흥(金麗興), 1756년(영조 32) 정시 갑과 장원급제, 호가 운산(雲山), 관서 삼화부(關西 三和府) 사람이다.
  • 김한목(金漢穆. 1865~1934) : 호가 탁신재(濯新齋), 월봉(月峰) 김광원(金光遠) 후손, 노사 기정진, 면암 최익현 제자로, 장성 물매 마을에 소요암(逍遙菴)이란 초당을 짓고 도학(道學)을 닦으며 수행에 전념했다.

근·현대편집

  • 김규철(金圭哲) : 의병, 항일투쟁, 건국훈장 애족장
  • 김준식(金駿植. 1888∼1969) : 탁신재(濯新齋) 김한목(金漢穆)의 아들, 자는 언경(彦卿), 호는 동곡(東谷), 경서와 사기 그리고 백가서에 모두 통달하였으며, 1930년대에 일제의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거부하고, 수련산에 들어가 초당을 건립하여 수백명의 문하생을 배출하였다. 장성 동강사(東江祠)에 배향되었다.
  • 김문평(金汶枰. 1906~1987) : 제헌 국회의원(전남 여수갑), 장인 김병로(金炳魯)
  • 김태정 : 제48대 법무부 장관
  • 김주훈 : 조선대학교 제12대 총장, 국기원 이사장
  • 김민환 :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교수
  • 김승환 : 대학교수, 전라북도교육감
  • 김성 : 민선 6기 장흥군수

과거 급제자편집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2명을 배출하였다.[8]

분파편집

  • 경 파 : 김정보(금오위 별장)
  • 영광파 : 김연(판도판서)
  • 장흥파 : 김태용(공조전서)
  • 문장파 : 김효민(서경유수)
  • 양사파 : 김광찬(좌찬성)
  • 용강파 : 김중보(호조참판)
  • 삼화파 : 김무수(평안도)
  • 강계파 : 김문경(예부상서)

집성촌편집

인구편집

  • 1985년 6,689가구 28,443명
  • 2000년 9,974가구 32,412명
  • 2015년 38,338명

각주편집

  1. 『고려사』 권93, 열전6
  2. <봉사 2조(封事二條)> 첫째는 [육정육사론(六正六邪論)]으로 신하의 도리를 언급하면서, 육정(성신·양신·충신·지신·정신·직신)을 행하면 번영하고, 육사(구신·유신·간신·참신·적신 및 망국의 신)를 범하면 욕이 된다는 내용이다. 둘째는 [자사육조(刺史六條)]에 관한 것으로 지방관이 해야 할 일 6가지를 기록하고 서경(西京)에 사헌(司憲) 1명을 분견하자는 것이었다.
  3. 일설에 김덕생의 선대는 본래 상주인(尙州人)이라 한다.
  4. 고조 김충(金忠)은 장수로서 왜적 토벌에 여러 차례 공을 세움, 증조 김자송(金子松)은 검교 신호위 보승 중랑장, 조부 김언(金彦)은 별장군, 고 김운보(金云寶)는 초명이 김벌대(金伐大) 명에서 김참(金參)이라 이름을 내렸으나 뒤에 김운보(金云寶)로 고침. 홀지 서북면 좌일번 도원수가 되었다가 조선조에 승록대부 영중추부사에 올랐다.
  5. 『국조방목(國朝榜目)』 본관이 나주(羅州)로 기록되어 있음.
  6. 『국조방목(國朝榜目)』에는 본관이 “영광(靈光)”으로 되어 있으나, 1763년 『상산김씨세보(商山金氏世譜)』 貞(壬編上)에는 본관을 상산(商山)이라 함
  7. 『국조방목(國朝榜目)』에는 본관이 “영광(靈光)”으로 되어 있으나, 1763년 『상산김씨세보(商山金氏世譜)』 貞(壬編上)에는 본관을 상산(商山)이라 함
  8. 영광 김씨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