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후
고려의 승려 (?–?)
김윤후(金允侯/金允候[1]: 생몰년 미상)는 고려 고종~원종 때의 승장(僧將)이다.[2]
김윤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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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입적 | 미상 |
생애
편집일찍이 승려가 되어 백현원(白峴院: 오늘날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 위치해 있음[3])에 있었다.[2]
1232년(고종 19년)에 몽골 침입 당시 처인성(處仁城: 오늘날 경기도 용인시 남사읍 아곡리에 위치)에서 몽골 장군 살리타(撒禮塔)를 살해했다.[4] 그 공으로 임금이 상장군을 주었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2] 이 전투로 처인부곡은 일반 군현으로 승격되었다.[5]
1253년(고종 40년)에 섭랑장(攝郞將)을 거쳐 충주산성 방호별감(防護別監)으로 있을 때 몽골군이 성을 포위하고 70여 일을 공격했으나 군민이 일치단결해 성을 사수하고 이를 격퇴시켰다.[2] 그 공으로 감문위(監門衛) 섭상장군(攝上將軍)이 되고[6] 그 밖의 공적이 있는 관노·백정에 이르기까지 상을 받았다.[2] 이 전투로 이듬해인 1254년(고종 41년)에 충주가 국원경으로 승격되었다.[7]
1259년(고종 46년)에 동북면 병마사에 임명되었으나,[8] 그때 동북면은 몽골에 함락당했으므로 부임하지 못했다.[2]
조선에서의 평가
편집조선에서 많이 언급되는 편은 아니지만 그를 좋게 평가한 듯하다. 예를 들면 영조대에 올바른 인사 정책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언급되거나[11] 임진왜란 때 조헌이 의병을 일으키면서 거론되는 등[12]을 들 수 있다.
김윤후가 등장한 작품
편집드라마
편집관련 논문
편집- 김호준, 〈高麗 對蒙抗爭期 金允侯將軍의 3次例 勝戰의 意義〉, 《백산학보》 114, 백산학회, 2019년
- 강재광, 〈1253년 충주성전투 승첩과 방호별감(防護別監) 김윤후(金允侯)의 역할〉, 《한국사연구》 202, 한국사연구회, 2023년
같이 보기
편집참고 자료
편집- 《고려사》
- 《고려사》 권103, 〈열전〉16, 김윤후
- 《고려사절요》
- 《동국이상국집》
- 《신증동국여지승람》
- 김용선 엮고 옮김, 《역주 고려 묘지명 집성 (하)》(개정 3판), 한림대학교출판부, 2021
각주
편집- ↑ 《고려사》에서 두 표기가 혼용된다.
- ↑ 가 나 다 라 마 바 《고려사》 권103, 〈열전〉16, 김윤후
- ↑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0, 경기 진위현 역원 백현원 조
- ↑ 이규보, 《동국이상국집·전집》 권28, 동진에게 답하는 별지
- ↑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최서 묘지명〉에 따르면 이 전투가 끝나고 난 뒤 어느 시기에 처인부곡에서 처인현(縣)으로 승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 《고려사절요》 권17, 고종 41년(1254년) 2월
- ↑ 《고려사》 권56, 〈지리지〉1, 양광도 충주목
- ↑ 《고려사》 권24, 〈세가〉24, 고종 46년(1259년) 1월 14일(무오)
- ↑ 《고려사》 권25, 〈세가〉25, 원종 3년(1262년) 12월 25일(정축)
- ↑ 《고려사》 권25, 〈세가〉25, 원종 4년(1263년) 12월 20일(병인)
- ↑ 《승정원일기》 710책, 영조 6년(1730년) 9월 7일(계유) 20번째 기사
- ↑ 조헌, 《중봉집》 권13, 起義討倭賊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