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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후(金允侯, 생몰년 미상)는 고려 고종 때의 승장(僧將)이다.[1]

Picto infobox military.png
김윤후
金允侯
생애 ? ~ ?
출생지 고려 양광도 용인
(現 대한민국 경기도 용인시)
별명 불교 승려 법명백현(白峴)
종교 불교
복무 고려 군사
복무 기간 1232년 ~ 1263년
최종 계급 고려 수사공 우복야
지휘 고려군 감문위 상장군
주요 참전 여몽 전쟁
기타 이력 고려 불교 승려 출신 무관 장군

목차

생애편집

일찍이 승려가 되어 백현원(白峴院: 現 대한민국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 위치)에 있었다.[1]

1232년(고종 19년)에 몽골 침입 당시 처인성(處仁城)에서 몽골 장군 살리타(한국 한자撒禮塔)를 살해했다. 그 공으로 임금이 상장군을 주었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1]

1253년(고종 40년)에 섭랑장(攝郞將)을 거쳐 충주산성 방호별감(防護別監)으로 있을 때 몽골군이 성을 포위하고 70여 일을 공격했으나 군민이 일치단결해 성을 사수하고 이를 격퇴시켰다.[1] 그 공으로 감문위(監門衛) 섭상장군(攝上將軍)이 되고[2] 기타 공 있는 자는 관노·백정에 이르기까지 상을 받았다.[1]

1259년(고종 46년)에 동북면 병마사에 임명되었으나,[3] 그때 동북면은 이미 몽골의 수중에 들어갔으므로 부임하지 못했다.[1]

1262년(원종 3년)에 추밀원 부사로 임명되었다.[4]

1263년(원종 4년)에 수사공 우복야(守司空右僕射)로 임명되었다.[5]

사라진 기록편집

처인성 전투 이전과 원종 4년(1263) 이후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사 전(13화: 고려 영웅 김윤후-몽골을 두 번 격파하다)과 역사저널 그날(138화: 승려 김윤후, 세계 최강 몽골군을 두 번 무찌르다)에 나오는 내용에 따르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몽골과의 전쟁 이후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몽골과의 전쟁 중에 공을 세운 사람들을 높게 평가하기 어려웠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고려에서는 승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것과 달리 숭유억불의 이념을 삼았던 조선에서는 승려 출신의 인물들을 좋게 평가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하지만 조헌의 문집인 『중봉집』에는 '김윤후는 화살 하나로 돼지를 맞혀 죽여 황성에서 몽병을 물리쳤으니…'[6]라는 기록이 다시 등장해 기술되는 등 조선 시대 후기부터 조금씩 조명되었다.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함께 보기편집

전기 자료편집

  • 『고려사』 권103, 「열전」16, 김윤후

참고 자료편집

각주편집

  1. 『고려사』 권103, 「열전」16, 김윤후
  2. 『고려사절요』 권17, 고종 41년(1254) 2월
  3. 『고려사』 권24, 「세가」24, 고종 46년(1259) 1월 14일(무오)
  4. 『고려사』 권25, 「세가」25, 원종 3년(1262) 12월 25일(정축)
  5. 『고려사』 권25, 「세가」25, 원종 4년(1263) 12월 20일(병인)
  6. 조헌, 『중봉집』 권13, 「기의토왜적격」, "金允侯一箭豕殪。退蒙兵於黃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