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교
조선 후기의 문신
김이교(金履喬, 1764년 ~ 1832년 음력 7월 30일)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자는 공세(公世), 호는 죽리(竹里)이며 본관은 본관은 안동(安東), 관찰사 김방행(金方行)의 아들이다.
김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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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우의정 | |
신상정보 | |
출생일 | 1764년 |
사망일 | 1832년 |
1789년 문과에 급제한 이래 조정의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쳤다. 장헌세자를 옹호하는 시파에 속했기 때문에 신유박해 때 유배되기도 하였다. 1806년 풀려나 다시 강원도관찰사, 성균관대사성 등 중앙과 지방의 요직을 두루 맡았다. 이후 1811~1812년 도쿠가와 이에나리의 쇼군 취임을 축하하는 통신사 정사로 쓰시마섬에 다녀왔다.[1] 이후 동지성균관사, 사헌부대사헌, 비변사제조, 홍문관부제학, 규장각직제학, 우부빈객, 공조판서, 홍문관제학, 한성부판윤, 지중추부사, 형조판서, 이조판서, 평안도관찰사, 좌부빈객, 예문관제학, 의정부우참찬, 병조판서, 판의금부사, 예조판서, 좌빈객, 대제학 등 조정의 요직을 두루 맡은 끝에 1831년 우의정이 되었다. 사후 순조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가계
편집- 증조부 : 김성도[2](金盛道)
- 할아버지 : 김시찬(金時粲)
- 아버지 : 김방행(金方行)
- 어머니 : 심황(沈鐄)의 딸
- 부인 : 어석정(魚錫定)의 딸
- 아들 : 김영순(金英淳)
- 손자 : 김연근(金延根)
- 손자 : 김정근(金廷根)
- 아들 : 김영순(金英淳)
- 부인 : 어석정(魚錫定)의 딸
- 할아버지 : 김시찬(金時粲)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외부 링크
편집전임 조엄 |
제11대 조선 통신사 정사 1811년 |
후임 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