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안동 김씨

한국의 성씨 중 하나

신 안동 김씨(新 安東 金氏)는 경상북도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신 안동 김씨(安東 金氏)
장동 김씨(壯洞 金氏)
관향경상북도 안동시
시조김선평(金宣平)
중시조김습돈(金習敦)
주요 인물김삼근, 김계권, 김계행, 김번, 김원효, 김극효, 김상용, 김상준, 김상헌, 김광욱, 김광찬, 김광혁, 김광현, 김수흥, 김수항, 김창집, 김창협, 김창흡, 영빈 김씨, 김이소, 김이교, 김달순, 김희순, 김조순, 김홍근, 김흥근, 김좌근, 김병연, 김병학, 김병덕, 김병국, 김병시, 김옥균, 김호규, 김덕규, 김영진, 김좌진, 김가진, 김기진, 김광림, 김종한, 김두한, 김수한, 김세현, 김모임, 김범일, 순원왕후, 효현왕후, 철인왕후, 영빈 김씨
인구(2015년)47,702명 (145위)

역사편집

시조 김선평(金宣平)은 신라 말 고창군(古昌郡. 안동)의 성주로서, 930년(고려 태조 13년) 권행·장길과 함께 고려 태조를 도와 후백제군을 격파한 공으로 대광에 임명되었고, 삼한벽상공신에 책록되고 태사(太師)의 작위를 받았다. 이후 고창군이 안동부로 승격되었다.[1] 공수부정 김습돈(金習敦)을 중시조로 한다.

조선조에 들어와 후손 비안현감 김삼근(金三近)이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 부근에 살다가 소산리으로 옮겨 정착한 이래 크게 번성하였다. 장자 김계권(金係權)은 한성판관이고, 차자 김계행(金係行)은 대사헌을 지냈다.

김계권은 5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세조의 국사를 지낸 명승 학조대사(學組大師)이고, 둘째 김영전(金永詮)은 사헌부감찰, 셋째 김영균(金永勻)은 진사, 넷째 김영추(金永錘)는 수원부사, 다섯째 김영수(金永銖)는 사헌부장령을 지냈다.

다섯째 사헌장령 김영수는 3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 김영(金瑛)은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의를 지내고, 둘째 김번(金璠)도 문과에 급제하여 평양서윤이 지냈으며, 셋째 김순(金珣)은 진사시에 합격하여 형조좌랑을 지냈다.

평양서윤을 역임한 김번(金璠)의 후손들이 안동 김씨 서윤공파로 분파하였는데, 당상관(정3품 이상) 136명, 판서 35명, 대제학 6명, 정승 15명, 왕비 3명, 후궁 1명, 부마도위 2명, 종모공신 6명 등을 배출 하여 조선조 가장 많은 고관대작을 배출하였다.

손자 동지돈녕부사 김극효와 그의 아들 김상용, 김상헌 형제가 크게 현달하여 인조 때 상신에 올랐다. 김상헌의 손자 영의정 김수항의 아들들인 영의정 김창집, 대제학 김창협, 사헌부집의 김창흡, 이조참의 김창업, 왕자사부 김창즙, 김창립 형제는 덕망과 명망으로 크게 현달하고 당대를 주름잡았던 인물들로 서인 노론 세력의 중추가 되었다.

영의정 김창집의 현손 김조순의 딸이 순조의 왕비 순원왕후가 되면서 김조순은 국구로서 영안부원군에 봉해졌고, 헌종의 왕비 효현왕후,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에 이르기까지 세도 가문이 되었다. 이들 후손들은 한양 백악산 아래 장의동에 세거하였데 세칭 장동 김씨(壯洞 金氏) '장김((壯金)'이라 한다.

대대로 벼슬한 양반 가문이라 하여 “금관자(金貫子)가 서 말인 집안”이라고 말하며, 17세기 이후 명실공히 국반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고관대작편집

조선
근현대

항렬자편집

22세 23세 24세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36세 37세 38세 39세 40세 41세 42세 43세 44세 45세
□순(淳) □근(根) 병(炳) □규(圭)
□균(均)
□진(鎭) □한(漢) □동(東) □현(顯) □년(年)
□기(基)
□일(鎰)
□종(鍾)
□구(求) □모(模) □연(然) □배(培) □선(銑) □원(源) □영(榮) □사(思) □준(浚) □선(善) □택(澤) □식(植) □환(煥) □철(喆)

인구편집

  • 1985년 5,047가구, 21,554명
  • 2015년 15,068가구, 47,702명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