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기 (독립운동가)

김한기(金漢琦, 1897년 12월 27일(1897-12-27)~1982년 3월 25일(1982-03-25))는 일제 강점기 조선 시대의 독립운동가인데, 1919년 3월 17일 당시 경남 지역의 부산 범어사 앞거리의 삼월 대한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김한기
신상정보
본명김말종(金末鍾) → 김한기(金漢琦)
출생1897년 12월 27일(1897-12-27)
대한제국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남산리 403번지
사망1982년 3월 25일(1982-03-25)(84세)
대한민국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범천동
거주지일제강점기 조선 경상남도 부산부
국적대한민국
본관김해(金海) 김씨 문경공파
직업항일 독립 운동가
학력경남창녕군립남창보통학교 졸업(1910년 3월)
형제2남 4녀 중 차남(막내)
활동 정보
관련 활동독립운동
활동 기간1919년~1921년
주요 활동삼월 대한 독립 만세 운동
경력1919년 3월 17일 경남 부산 범어사 앞거리 대한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
상훈대통령 표창장(1986. 03. 01.)
건국훈장 애족장(1990. 03. 01.)
웹사이트김한기 : 독립유공자 공훈록 - 국가보훈처

1919년 3월 17일, 경남 부산 범어사 앞거리 삼월 대한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면서 1년간 옥고를 치르고 나서, 1920년 3월 17일 출감하였다. 사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1986년 3월 1일 대통령 표창장이 추서된 이후 1990년 3월 1일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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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경남 부산 동래(東萊)의 제법 농토(農土)가 있는 중농가(中農家)에서 2남 4녀 가운데 막내이자 김말종(金末鍾)이라는 아명(兒名)으로 출생한 그는, 1901년 5세 때에 김한기(金漢琦)로 개명(改名)하였고, 1904년 3월 경남김해사립육영보통학교에 입학하였지만, 1908년 3월 경남부산사립부산진육영보통학교의 5학년으로 전학하였고, 이듬해 1909년 3월에 경남창녕군립남창보통학교의 6학년으로 마지막 전학 이후 1910년 3월에 졸업하였으며, 그 이후 1919년 3월 17일 경남 부산(釜山)의 범어사(梵魚寺)에서 차상명(車相明) 등과 같이 함께, 삼월 대한 독립 만세 운동 관련 시위를 계획하고 결국, 그날 밤 같은 장소에서 대한 독립 만세 운동 관련 시위를 하다가 붙잡혔다. 그리하여 1919년 4월 17일 경남 부산지법(부산지방법원)에서는 소위 특수소요죄 등으로 인하여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아 항소 및 공소하였으나, 1919년 5월 20일 경북 대구복심법원에서는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고, 1920년 3월 17일 만기 출감하였다.

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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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고자 1986년 3월 1일 대통령 표창장과, 1990년 3월 1일 건국훈장 애족장이 각각 추서되었다.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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