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김씨

한국의 성씨 중 하나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경상남도 김해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다. 금관가야(金官伽倻)의 수로왕(金首露)을 시조로 한다.

김해 김씨(金海 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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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의 종문
관향경상남도 김해시
시조김수로(金首露)
중시조김유신(金庾信)
집성촌경상남도 창원시·진주시·창녕군·김해시·하동군
경상북도 포항시·김천시·청도군·상주시·고령군
경기도 성남시·수원시·시흥시·용인시·여주시·안성시
충청남도 부여군·공주시·논산시·보령시
전라남도 신안군·영암군·진도군·영광군·해남군
전라북도 장수군·남원시·고창군·부안군
함경북도 나진시·경성군·명천군
주요 인물김상좌, 김보, 김유, 김저, 김수연, 김극일, 김일손, 김대유, 김축, 김완, 김경서, 공빈 김씨, 김예직, 김우항, 김홍도, 김만덕, 김대건, 김원봉, 김두봉, 김상옥, 김준연, 김현철, 김철호, 김성곤, 김종오, 김수영, 김대중, 김종필, 김상현, 김일, 김지하, 김주열, 남진, 김홍신, 김훈, 김상곤, 김명곤, 김부겸, 김기현, 김병만, 김종국,
인구(2015년)4,456,700명 (1위)
비고김해김씨

역사편집

가락국수로왕(首露王)을 시조로 하고, 흥무대왕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한다.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오천간, 신귀간의 아홉 명의 촌장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 자주색 밧줄에 붉은 보자기에 쌓인 금합이 구지봉에 강림하고 여섯개 황금 알 중에 제일 먼저 나온 아이를 수로(首露)라 하고 가락국의 왕이 되니 김해김씨의 시조가 된다. 이후 후손들이 가락국이 세워진 김해를 본관으로 삼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관가야는 5세기 광개토태왕의 남정 이후 급속히 쇠퇴하게 된다. 532년(법흥왕 19년) 신라에 투항하여 진골 귀족이 된 가락국의 마지막 왕으로 김유신의 증조부가 되는 구형왕(仇衡王)은 신라에 투항함으로써 상등의 작위를 받고, 금관국을 식읍으로 받았으며. 그의 세 아들 중 차남 김무력(金武力)이 신라에서 장군이 되어 관산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최고의 관등인 각간(角干)을 지냈고, 신라의 한강유역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아들 김서현(金舒玄)은 백제와 여려번의 전투에서 공을 세워 대양주도독(大梁州都督)을 지냈고, 고구려 낭비성을 함락시키고 각간(角干)으로 제수 받았으며, 김서현의 딸 문희(文姬)는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과 혼인하여 문명왕후(文明王后)가 되었다. 김서현의 아들 김유신(金庾信)은 무열왕과 함께 삼국통일의 대업(大業)을 달성한 명장(名將)으로 무열왕의 딸 지소부인(智炤夫人)과 혼인했으며, 태대각간(太大角干)에 이르렀고, 사후에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되었다. 김해김씨는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번성해 왔다. 이런 신김씨의 위세가 쇠퇴한 계기는 780년 혜공왕이 피살당하는 것으로 무열왕계 왕통이 단절되고 선덕왕내물왕계가 왕위를 잇게 되면서부터 다른 진골 귀족들로부터도 다시금 경원 당하면서 심지어 6두품으로 추락했다.[1][2]

진성여왕 때에 신라가 혼탁하여 김상좌(金商佐)가 왕건에게 위탁해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워 삼중대광(三重大匡) 개국원훈(開國元勳)에 올른 이래 그 후손들이 문무 명신을 배출한 삼한갑족으로 위세를 떨쳤다. 고려 시대에만도 정승급 15명을 비롯하여, 명신·공신 10여 명과 장군 8명, 제학 11명 등 숱한 인물을 배출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대게 조선 개국에 반대하는 고려 충신들이 많았으며 무오사화(戊午士禍)[3][4]를 비롯한 정치적 사건들에 휘말려 쇠락을 면치 못했다.

김희철(金希哲)의 딸이 선조(宣祖)의 후궁 공빈 김씨(恭嬪 金氏)가 되면서 김희철은 국구(國舅)로서 해령부원군(海寧府院君)에 봉해졌고, 아들 광해군(光海君)이 왕으로 즉위한 후 공성왕후(恭聖王后)로 추존되었으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다시 후궁으로 강등되었다.

역대 정승에서도 숙종조의 김우항(金宇抗) 한 사람뿐이었다. 조선시대 유일한, 그리고 최후의 정승이었다.

본관편집

김해(金海)는 경상남도 김해시(金海市)의 지명이다. 낙동강(洛東江) 하구 남서쪽에 위치하여 가락국(駕洛國)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왔다.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 680년(문무왕 20)에 금관소경(金官小京)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바꾸어 양주(良州)의 관할로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김해부(金海府)로 개칭되었고 임해현(臨海縣)으로 다시 강등되었다가 곧 임해군으로 승격되었다. 995년(성종 14)에 김해안동도호부(金海安東都護府)로 개칭하여 영동도(嶺東道)에 속하였다가 1012년(현종 4) 김해군방어사로 강등되었으나 1018년부터는 의안군(義安郡: 昌原)·함안군(咸安郡)·칠원현(漆原縣: 漆原面)·웅신현(熊神縣: 鎭海)등을 영현으로 삼았다. 1270년(원종 11) 방어사(防禦使) 김훤이 인접지역인 밀성(密城)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1293년(충렬왕 19) 현으로 강등되었다. 1308년 금주목(金州牧)으로 승격하였으나 1310년(충선왕 2) 김해부(金海府)로 격하되었다. 1413년(태종 13) 김해도호부로 승격되어 세조 때 진(鎭)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김해군이 되었고, 1981년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하여 분리되었으며, 1995년에는 김해군을 통합하였다.

세계도편집

1 태조왕

太祖王

2 도왕 道王
3 성왕 成王
4 덕왕 德王
5 명왕 明王
6 신왕 神王
7 혜왕 惠王
8 장왕 莊王
9 숙왕 肅王
10 양왕 讓王 김탈지 金脫知
11 김세종 金世宗 김무력 金武力 김무득 金武得

금릉 김씨

12 김솔우 金率友 김서현 金舒玄
13 흥무대왕

興武大王

김유신 金庾信

김흠순 金欽純
14 김삼광 金三光 김원술 金元述

진주 김씨

김원정 金元貞 김장이 金長耳 김시득 金施得 김반굴 金盤屈
15 김윤중 金允中 김윤문 金允文 김영윤 金令胤
16 김장청 金長淸 김암 金巖
17 김웅원 金雄元
18 김경주 金擎柱
19 김성해 金成海 김성대 金成垈
20 김정철 金挺喆
21 김수윤 金琇胤 김옥윤 金玉胤
22 김천수 金天授 김천여 金天與
23 김상좌 金商佐
24 김호 金浩
25 김화제 金華齊
26 김진유 金振酉
27 김승의 金承意 김계의 金繼意 김진의 金進意
28 김천정 金天精
29 김항령 金恒齡
30 김수성 金洙聖
31 김상흠 金商欽 김상현 金商賢 김상인 金商寅
32 김성우 金成雨
33 김일서 金一曙
34 김광국 金匡國
35 김종백 金宗栢
36 김수 金繡
37 김이탁 金以琢
38 김서천 金瑞天
39 김양철 金陽喆
40 김시추 金是秋
41 김진국 金鎭國 김정국 金定國
42 김규상 金奎祥
43 김도협 金道浹
44 김탕우 金湯雨
45 김만서 金萬瑞
46 김사맹 金師孟
47 김상주 金相宙
48 김방직 金邦直 김용직 金龍直
49 김익섬 金益銛 김관 金管

판도판서공파

版圖判書公派

50 김주국 金柱國
51 김절경 金晢卿 김목경 金牧卿

금녕군파

金寧君派

김익경 金益卿

감무공파

監務公派

분파편집

김해김씨는 신라김씨의 알지계(閼智系)와 함께 우리나라 김씨의 양대산맥을 이루어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번성하여 왔다. 특히 김해김씨는 족세(族勢)가 크게 번창해짐에 따라 148여파로 분파(分派) 되었다. 그 중 직계종파는 김목경을 파조로 하는 경파(京派), 김익경을 파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을 파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가 있다. 여기에 경파, 사군파, 삼현파마다 각각 세부적인 인물을 중조로 하여 총 24개의 공파로 구분되어 있는 등 계보가 복잡하다.

  • 종파
    • 경파(京派), 금녕군파(金寧君派) - 김목경(金牧卿)
      • 참판공파(參判公派): 김영견(金永堅)
      • 횡성공파(橫城公派): 김영서(金永瑞)
      • 안경공파(安敬公派): 김영정(金永貞)
      • 석성공파(石城公派): 김영순(金永純)
      • 호참공파(戶參公派): 김진서(金震敍)
      • 참찬공파(參贊公派): 김달문(金達門)
      • 봉상공파(奉常公派): 김현문(金顯門)
      • 밀직사공파(密直使公派): 김창문(金昌門)
      • 문간공파(文簡公派): 김저(金著)
      • 밀직공파(密直公派): 김수(金秀)
      •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김란(金蘭)
    • 사군파(四君派), 감무공파(監務公派) - 김익경(金益卿)
      • ①생원공파(生員公派): 김련(金鍊)
      • 도총관공파(都摠管公派): 김추(金錘)
      • ②생원공파(生員公派): 김구(金銶)
      • 찬성공파(贊成公派): 김석(金錫)
      • 상서공파(尙書公派): 김감(金鑑)
      • 공간공파(恭簡公派): 김조(金銚)
    • 삼현파(三賢派),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 김관(金管)
      • 군수공파(郡守公派): 김건(金建)
      • 참판공파(參判公派): 김맹(金孟)
      • 한림공파(翰林公派): 김용(金勇)
      • 진사공파(進士公派): 김순(金順)
      • 녹사공파(錄士公派): 김인(金靭)
      • 진의공파(進義公派): 김현(金鉉)
  • 천여(天與)계
    • 첨정공파(僉正公派) - 김덕휴(金德休)
  • 진의(進意)계
    • 운은공파(雲隱公派) - 김대진(金大震
    • 문경공파(文敬公派) - 김탁(金琢)
    • 부사공파(府使公派) - 김근(金瑾)
    • 한림공파(翰林公派) - 김관(金鑧)
    • 충정공파(忠貞公派) - 김구(金玖)
    • 도사공파(都事公派) - 김련(金璉)
    • 승정공파(承政公派) - 김현(金現)
    • 휴은공파(休隱公派) - 김호(金琥)
    • 장사군파(長沙郡派) - 김선(金璇)
    •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 - 김득하(金得河)
    • 도총관공파(都總管公派) - 김경신(金敬臣)
    • 판윤공파(判尹公派) - 김경보(金敬輔)
  • 상현(商賢)계
    • 판전공파(判典公派) - 김명택(金明澤)
    • 판서공파(判書公派) - 김불비(金不比)
    •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 - 김만희(金萬希)
    • 참봉공파(参奉公派) - 김인서(金鱗瑞)
    • 충정공파(忠精公派) - 김이장(金以障)
    • 승정공파(承政公派) - 김종정(金宗貞)
    • 부호군공파(副護軍公派) - 김천익(金天翼)
    • 판결사공파(判決事公派) - 김을동(金乙棟)
    • 진사공파(眞士公派) - 김문(金汶)
  • 상인(商寅)계
    • 유수공파(留守公派) - 김운(金蕓)
  • 정국(定國)계
    • 판서공파(判書公派) - 김유공(金維公)
    • 부호군공파(副護軍公派) - 김거공(金巨公)
    • 승사랑공파(承仕郞公派) - 김지서(金之瑞)
    • 부정공파(副正公派) - 김평(金平)
      • 양의공파(襄毅公派) - 김경서(金景瑞)
    • 판서공파(判書公派) - 김첨검(金添劍)

항렬자편집

  • 경파(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사군파(四君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삼현파(三賢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문경공파(文敬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과거 급제자편집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문과 128명, 무과 536명, 사마시 471명, 역과 59명, 의과 39명, 음양과 15명, 율과 33명, 주학 8명이다.

인물편집

신라편집

  • 김무력(金武力): 가야국 제10대 구형왕(仇衡王)의 셋쩨왕자. 가야가 신라에 병합되고 아찬(阿湌)으로 신주군주(新州軍主)가 되었고,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군사 삼만여명을 도륙하고 백제 성왕을 사로 잡았다. 최고의 벼슬인 각간(角干) 까지 올랐다.
  • 김서현(金舒玄): 김무력(金武力)의 아들. 대량주총관(大良州總管)으로 백제와 여러번 싸워 이기고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함락(陷落)시키고 각간(角干)에 올랐다.
  • 김유신(金庾信): 가야국의 시조 수로왕(首露王)의 12세손. 660년에 당나라의 소정방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에 고구려를 정벌한 후 당나라 군사를 축출하는 데 힘써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졌다. 벼슬이 태대각간(太大角干)에 이르었으며 사후 흥무대왕(興武大王)에 추존되었다.
  • 김흠순(金欽純): 김유신(金庾信)의 아우. 황산벌 전투백제 부흥 운동 진압에 참전하였고, 고구려와의 전쟁에서는 대당 총관(大幢摠管)이 되어 출정하는 등 삼국 통일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이후 당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외교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 김삼광(金三光): 김유신(金庾信)의 맏아들. 666년에 당나라에 숙위로 파견을 갔고 당나라 장수 유인궤(劉仁軌)와 함께 고구려를 정벌했다.
  • 김반굴(金盤屈): 김흠순(金欽純)의 아들이자 김유신(金庾信)의 조카이자 사위. 황산벌 전투에서 충효(忠孝)를 다할 것을 맹세하고,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분전 끝에 전사하였다.
  • 김시득(金施得): 김유신(金庾信)의 서자. 기벌포(伎伐浦)에서 당나라의 장군 설인귀(薛仁貴)와 대적하여 당나라 수군과의 22회 해전 모두 승리해 4,000여 명을 살상해 당군을 격퇴하였다.
  • 김원술(金元述): 김유신(金庾信)의 차남. 석문 전투에 출전했으나 패전하고 살아서 돌아와서 이에 격노한 부모에게 버림 받아 태백산에 은신해 있을 때 매소성(買肖城)으로 당군이 쳐들어 올때 죽을 각오로 전장에서 싸워 승전을 이끌었다.
  • 김영윤(金令胤): 김흠순(金欽純)의 손자이자 김반굴(金盤屈)의 아들. 고구려의 잔적들이 보덕성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러 갔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 김암(金巖): 김유신(金庾信)의 적손(嫡孫)인 김윤중(金允中)의 서손(庶孫). 당나라에서 방술(方術)을 익혀 그 재주가 뛰어났으며, 779년(혜공왕 15)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을 때 고닌 천황(光仁天皇)이 그의 재주가 탐나 억류했다.
  • 김웅원(金雄元): 김유신(金庾信)의 현손. 완산주도독을 지냈고 순천장군으로 당나라 이사도(李師道)의 난과 김헌창(金憲昌)의 난을 평정한 명장이다.

고려편집

  • 김상좌(金商佐): 수로왕(首露王)의 23세손. 고려 개국의 원훈이며진성여왕 때에 신라가 혼탁하여 김상좌가 왕건(王建)에게 위탁해 고려 개국을 도운 공으로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올랐다.
  • 김보(金普): 김목경(金牧卿)의 맏아들. 공민왕(恭愍王)이 세자 때 국가(國家)의 사절로서 중국(中國)의 북경(北京)에 갈 때 시종(侍從)한 공으로 일등공신(一等功臣)의 호(號)를 받았다.
  • 김유(金庾): 강릉도병마사로서 홍건적을 격파하고 개경(開京)을 수복하고 김용(金鏞)의 난을 진압했으며 탐라의 목호(牧胡)를 토벌했다.
  • 김저(金佇): 시중 최영(崔瑩)의 생질. 전부령 정득후(鄭得厚)와 함께, 폐왕 우왕을 만나 이성계를 살해하라는 부탁을 받고, 이성계의 집에 잠입하여 암살하려다 실패해 ‘김저의 옥사’가 일어났다.
  • 김진문(金振門): 김익경(金益卿)의 손자. 고려말에 예의판서(禮儀判書)를 거쳐 대제학(大提學)에 올랐으나 조선이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이색(李穡), 박자검(朴自儉) 등과 함께 은둔 생활하여 절의를 지켰다.

조선편집

  • 김조(金銚): 김진문(金振門)의 아들. 세종 때 집현전수찬을 거쳐 예조판서에 올랐으며, 직제학에 역임할 때 장영실(蔣英實)과 함께 간의대, 자격루, 혼천의 등을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 김수연(金壽延): 조선 전기 장군으로 김종서 등과 더불어 6진을 개척하고 계유정난으로 단종이 유배지 영월에서 비참하게 죽자 6일간 단식 끝에 자결한 충신이다.
  • 김자정(金自貞): 김조(金銚)의 아들. 예조 참의를 거쳐, 벼슬이 공조 판서에 이르렀다. 성종 8년(1477)에 재가(再嫁) 금지의 논의가 있자 재가를 허락할 것을 주장하였고, 노사신강희맹 등과 함께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였다.
  • 김극일(金克一): 김관(金管)의 현손. 어릴 때부터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님을 섬겼으며 어머니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 낫게 해 드리고, 아버지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변을 맛보았다고 전해진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시묘살이를 할 때 호랑이가 옆을 지켰다. 사시(私諡)는 절효(節孝)이다.
  • 김일손(金馹孫): 김극일(金克一)의 손자. 성종 17년(1486)에 문과에 급제하고, 이조 정랑을 지냈다. 춘추관 사관(史官)으로 있으면서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에, 이극돈의 비행(非行)을 그대로 쓰고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실었다고 하여 무오사화 때에 처형되었다.
  • 김대유(金大有): 김일손(金馹孫)의 조카이며 김준손(金駿孫)의 아들. 무오사화에 김일손이 참수 당하자 아버지와 함께 호남에 유배되었다가 중종 때 풀려나와 3개월간 칠원현감(漆原縣監)을 마지막 벼슬로 사직하고 청도의 운문산에 들어갔다.
  • 김현성(金玄成): 광해군 때 폐모론에 불참하여 면직되자 청빈하게 여생을 마쳤으며, 시·서·화에 두루 능하였는데, 그림보다는 글씨에 뛰어났으며 특히 시에 능하였다고 한다. 대표작으로 이충무공수군대첩비문(李忠武公水軍大捷碑文)이 있다.
  • 김경서(金景瑞): 임진왜란평양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고, 명나라의 요청으로 강홍립(姜弘立)과 후금 정벌 위해 출전하여 심하(深河)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 김극희(金克禧): 김진문(金振門)의 6세손.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막하에서 전공을 세우고, 한산도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 김축(金軸):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솔과 후학을 거느리고 권율(權慄)의 막하에 들어가 웅치 전투, 이치 전투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다. 또 다시 김천일(金千鎰)의 막하에서 활약하다 이듬해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대를 이을 큰아들만 집에 남기고 집안의 남자들이 모두 출진하여 6충, 1효, 4열부를 배출하였다.
  • 김완(金完): 김극희(金克禧)의 조카이자 김극조(金克祧)의 아들. 임진왜란 때에 남원대첩에 전공을 세우고, 이괄의 난을 평정하여 진무공신에 올랐다. 그 뒤 부총관ㆍ전라 우수사를 거쳐 훈련원 도정,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 김여준(金汝峻): 김완(金完)의 조카. 볼모로 잡혀가는 봉림대군(鳳林大君) · 소현세자(昭顯世子) · 인평대군(麟坪大君)을 호종한 무신. 중국 심양(瀋陽)에 갈 때 옥하관(玉河關)에서 「월명비안(月明飛雁)」의 시를 읊은 것으로 유명하다.
  • 김덕승(金德承): 여러 벼슬을 거쳐 목사(牧使)에 이르렀는데, 경사(經史) ·운서(韻書)를 연구하여 중국어에 능통했고, 글씨와 그림에도 능했다.
  • 김예직(金禮直): 임진왜란선조의주까지 호종했으며,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역임했다.
  • 김우항(金宇杭): 조선 숙종 때 우의정. 신임사화 때에 화를 입었다.
  • 김홍도(金弘道): 조선 영조 때 풍속화의 대가. 도화서 화원이 된 후 왕세손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정조의 어진(御眞)을 그렸다.
  • 김만덕(金萬德): 조선후기 제주의 거상. 자신의 전 재산을 풀어 당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던 제주도민을 도왔다.
  • 김천택(金天澤): 《해동가요》를 남기고 《청구영언》를 집필한 가인
  • 삼의당김씨(三宜堂金氏):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
  • 김대건(金大建):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교회 신부. 세례명은 안드레아. 마카오에서 신학을 배우고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1846년 병오박해로 순교.

일제강점기편집

대한민국편집

  • 김준연(金俊淵):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사임한 독립운동가. 광복 후 법무부 장관ㆍ제헌의원ㆍ국회의원 역임
  • 김주열(金朱烈): 1960년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실종되고 사망한 채로 발견되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 김현철(金顯哲):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 각 부처 장관을 지낸 내각수반
  • 김철호(金喆浩): 기아그룹 창업주
  • 김성곤(金成坤): 전 국회의원, 쌍용그룹 창업주
  • 김종오(金鍾五): 한국전쟁 제6사단장으로 백마고지 전투 지휘. 제15대 육군참모총장
  • 김대중(金大中):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 한국인 최초 노벨평화상을 수여하였다.
  • 김종필(金鍾泌): 초대 중앙정보부장으로 정계 입문한 9선 의원. 대한민국 제11·31대 국무총리.
  • 김 일 (金 一): 한국의 프로레슬링 선수
  • 김수영(金洙暎): 한국의 시인. 한국 전쟁4·19혁명의 경험으로 자유를 추구한 저항 시인 대표작으로 『눈』, 『풀』이 있다.
  • 김지하(金芝河): 한국의 시인. 1970년대 '타는 목마름', '오적(五賊)'으로 유명한 저항 시인
  • 남진(南珍): 한국의 가수로 1970년대 가요계 이끌었다. 대표곡으로 『님과 함께』가 있다.
  • 김홍신(金洪信): 한국의 소설가이자 제15·16대 국회의원. 대표작으로 『김홍신의 대발해』가 있다.
  • 김훈(金薰): 한국의 소설가로 대표작으로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칼의 노래』가 있다.
  • 김부겸(金富謙): 제16·17·18·20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문재인 정부행정안전부 장관과 제47대 국무총리 역임.
  • 김임식(金任植) :제6.8,9,10대 국회의원을 지냈고,동의대학교 설립
  • 김병만(金炳萬): 한국의 코미디언. KBS 개그콘서트달인》과 SBS 《정글의 법칙》으로 히트를 쳤다.
  • 김종국(金鍾國): 한국의 가수 겸 방송인. 터보의 구성원중 한 명이다.

사당편집

왕실과의 인척 관계편집

신라편집

조선편집

인구편집

  • 2000년 1,295,080가구 4,124,934명
  • 2015년 4,456,700명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성씨이며, 김씨 중에서도 가장 많은 41.7%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 서울 81만 5천 783명, 부산 40만 7천 41명, 대구 19만 9천 252명, 인천 20만 7천 736명, 광주 14만 8천 736명, 대전 9만 6천 887명, 울산 10만 4천 627명, 경기 71만 8천 661명, 강원 10만 7천 612명, 충북 8만 6천 978명, 충남 14만 151명, 전북 17만 3천 712명, 전남 26만 8천 525명, 경북 23만 7천 826명, 경남 35만 12명, 제주 6만 1천 395명이다. 부산과 경남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구분편집

신라계 김해 김씨는 김녕 김씨라고 하여 가야계 김해 김씨와 구분한다. 또는 사성 김해 김씨는 우록 김씨라고 한다.

분가편집

  • 허씨 - 가락국 수로왕비 허황옥(許黃玉)을 연원으로 삼는 성씨다.
  • 인천 이씨 - 허황옥의 23세손 이허기(李許奇)를 득성조라고 하고 상서좌복야 이허겸(李許謙)을 시조로 하며 태인 허씨에서 분관되었다.
  • 금릉 김씨 - 금관가야 구형왕(仇衡王)의 셋째 아들 김무득(金武得)을 시조로 한다.
  • 진주 김씨(가락계) - 김유신의 차남 김원술을 후예라는 설이 있다.
  • 무장 김씨 - 시조는 김수로왕의 후손 충절공 김선(金璇)이다. 일부 후손들은 김해 김씨 장사군파로 칭하고 있다.

분적설편집

  • 남양 김씨 - 김수로왕의 후예로써 고려 의종 때 사람인 김적(金適)을 시조로 한다.
  • 웅천 김씨 - 조선조에서 수의부위에 오른 김중재(金重材)를 일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김유신의 적손인 김윤중(金允中)이 성덕왕 때 일반귀족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김유신의 현손 김장청(金長淸) 역시, 집사부의 말단직 집사랑(執事郞)을 지냈을 뿐이다. 김융(金融)의 난과 관련 있어 보인다.
  2. 김웅원(金雄元)이 이사도의 난을 진압하고 이어 김헌창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 신무왕의 사돈이 된 것으로 보아 몰락하였던 김유신의 가계가 다시 부흥한 것으로 보인다.
  3. 조선 연산군대 탁영 김일손(金馹孫)의 사초에 수록한 「조의제문(弔義帝文)」(세조의 왕위찬탈을 비판한 내용)을 빌미로 훈구세력에 의해 일어난 사화
  4. 연산조의 학자 성현은 『용재총화』에서「옛날에는 성했다가 지금은 쇠한」씨족을 지적하는 가운데 김해김씨를 하나로 들고 있다.
  5. 금관가야의 마지막 국왕인 구형왕의 셋째 아들이자, 김서현의 아버지이며, 김유신의 할아버지이다.
  6. 김유신의 아우 김흠순의 손녀로 보고 있다.
  7. 김유신의 5대손이자 잡찬 김웅원의 아들이다.


외부 링크편집